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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 오늘 아침 디지털 조선일보

정강욱 작성일 00-08-15 09:24 13,006회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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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디지털 조선일보


오늘 새벽에 한 시민이 조선일보 site에 올린 글입니다.


의사들의 전쟁 - 그 이념과 전망


지금 한국에서는 자타가 인정하는 최고 전문가 집단인 의사들이 국민의 건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약 분업을 놓고 정권 재창출을 꿈꾸는 국민의 정부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처음부터 도저히 상대가 될 것 같지 않던 나약하고 언제나 사분오열된 의사 집단이 막강한 언론과 시민 단체를 우군으로 거느린 공룡 정권을 곤경에 빠뜨리며 매우 효과적으로 제 2차 의사들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지난 6월말의 1차 의사들의 전쟁부터 관심 있게 지켜 봐왔던 관전자라면 한번쯤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나약하고 보수적인 의사 집단과 공룡 같은 정부 사이에 도대체 어떻게 이런 전쟁이 가능할까? 이미 패배한 것으로 결론이 나버린 1차 의사들의 전쟁에서 과연 의사 들은 정말 패배한 것일까? 1차 의사들의 전쟁은 젊은 의사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기에 이들은 점점 더 강해 지는 걸까? 그리고 이 전쟁이 끝난 다음 우리 사회에서 의사 집단의 위상은 어떻게 변할까?

소위 의사들이라 불리는 것들은 원래 그 속성 상 다분히 민중 지향적 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허준처럼) 대부분은 기껏 자신의 이익과 주변의 잡스러운 것에만 관심을 가지는 도통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회와 격리된 서생 같은 정도로 우리 사회에 각인되어 있다.

그런데 어느날 자신들의 지위를 결정적으로 위협하는 의약 분업이라는 상징적인 사건에 이들은 분노하고 단결하여 1차 의사들의 전쟁을 일으켰다. 즉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는 민중 지향적인 제도인 의약 분업에 대해 집단 이기주의적인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의사들은 일사 분란 하였고, 자신들도 놀랄 만큼 그들의 힘은 막강했다. 무지한 정권의 무대책과 언론의 과대 망상적인 보도와 시민 단체의 신경질적인 반응은 현상을 과대 평가하도록 만들고 급기야 국민의 정부는 항복하는 듯이 보였다. 의사들은 의사들대로 의권과 진료권 보장이라는 당시로는 다분히 추상적이었던 구호아래 약사들에 의해 그들의 이익을 결정적으로 침해할 수 있는 임의 조제와 대체 조제의 금지를 정부에 요구하였고 그들은 승리하는 듯해 보였다.

그러나 여러 이익 집단과의 분쟁에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정부는 의사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정부가 통제하고 있는 언론과 시민 단체를 총 동원하여 의사들의 1차 전쟁을 의사와 약사의 밥그릇 싸움으로 몰고 갔고 의사 집단을 개혁적이고 민중적인 의료개혁에 대한 반개혁 세력으로 매도하고 고립 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의사 들의 요구는 미봉책으로 얼버무리며 일단 의료계 파업 사태만 해결하는데 주력하였다. 결국 1차 전쟁에서 의사 들은 패했고 분열되었으며 그들의 지도부는 구속되고 수배되어 와해되는 듯하였다.

1차 전쟁에서 의사들이 패배한 이유는 단순히 성급한 파업 철회와 같은 기술적인 문제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부 지도자를 제외하고 전투에 참여 중인 많은 개인들이 그들이 왜 싸워야 하는지 그들이 싸워야 하는 실체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몰랐기 때문이다. 전투에 임하는 의사 개인 개인들은 공통의 이데올로기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밥그릇 싸움이라는 논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고 히포크라테스와 허준을 들이대며 의사들을 비윤리적인 집단으로 윽박지르는 공격에 몹시 곤욕스러워 해야만 하였다.

그러나 전공의가 중심이 된 젊은 의사들이 시작한 제 2차 의사들의 전쟁은 1차와는 다르게 진행되었다. 처음부터 일사 분란 하였던 1차 전쟁과는 달리 2차 전쟁은 확실한 지도부나 내부의 의견 통일 없이 다분히 자연 발생적으로 시작되었다. 경제적 손실 보전이 주 관심이었던 개원의 들은 소극적이었고 의사 사회 내에서도 기득권 세력인 의대 교수들은 처음부터 전공의들의 입장에 반대하였다. 뿐만 아니라 전공의 내부에서도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는 듯하였다. 어렵게 시작한 2차 전쟁은 처음에는 정권이나 그들의 우군인 언론과 시민 단체들, 그리고 의약 분업의 최대 수혜자인 약사 재벌들의 관심을 별로 끌지 못하고 저러다 사그러지겠지 정도 였다.

8월이 되어 전면 의약분업은 시작되었다. 애초 예상되었던 대로 일반 시민들은 불편하고 귀찮아 하였고, 정부의 약속과는 달리 더 많은 돈을 내야 했고, 대체 조제와 임의 조제에 의한 피해가 심각하였다. 동네 의원과 동네 약국은 문을 닫아야 할 실정이고 오직 대형 병원 앞에 포진한 미래의 약사 재벌들만이 즐거운 비명을 질러 됐다.

잘못된 약사법에 기초한 의약분업의 초기 혼란은 산발적이고 통일 전선을 형성하지 못한채 전쟁을 수행하는 젊은 의사들에게 서서히 힘을 실어 주기 시작하였다. 결국 개원의와 교수 들까지 모두 전쟁에 동참시켰고, 남북 화해에 운명을 걸고 정권 재창출을 꿈꾸는 국민의 정부를 몹시 당황하고 화나게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사회 운동이라고는 한번도 해 본적이 없는 젊은 의사 들은 1차 의사들의 전쟁에서 결코 패배하지 않았던 것이다. 1차 전쟁은 오히려 그들에게 의식화를 위한 학습의 기회를 주었고, 정부, 부패한 관리, 그들과 결탁한 약사, 언론, 멍청한 시민단체의 집중 포화 속에서 그들의 주적(敵)이 누군지를 확실히 할 수 있었고, 무엇 보다도 이 혼탁한 전쟁에서 승리하기위한 그들의 공통의 이념을 서서히 확립해 나가는데 성공하였다.

비전문가로서 본인은 약사법의 옳고 그름을 이곳에서 논할 생각은 없다. 본인의 관심은 국민의 정부가 자신 있게 제안한 당근을 단호하게 거절하는 젊은 의사들의 단호함이다. 그들은 왜 현 시점에서 기대되는 최대치의 이득을 단호하게 거절하는 비현실성을 보였을까? 왜 그들은 전쟁의 전리품을 거절하고 정부, 언론, 시민단체 연합군의 집중 포화를 감내하기로 결정하였을까? 도대체 어떤 이익 단체가 이정도 성의와 당근을 거절한 적이 있는가?

젊은 의사 들은 1차 전쟁과는 달리 지금 진행 중인 2차 전쟁에서 확고한 이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이 주장하는 약사법의 개정은 단순히 대체 조제와 임의 조제의 근절을 통한 의사의 경제적 이익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들이 주장하는 의권 보장이란 지금 시행 중인 잘못된 의약 분업을 단순히 고쳐 달래는 것이 아니라 반 민중적인 약사법과 보건-의료 관련 법의 개정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지금 의약 분업의 시행 과정에 약간의 관심만 가져도 그 결과는 너무나 반 민중적인 것을 알 수 있다. 즉 의약 분업의 직접적인 대상자인 국민, 특히 그 중 약자인 노인, 어린이, 장애인, 부녀자 들의 불편은 극에 달하는 반면, 약사 중 일부만이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고, 민중과 가까이 있는 동네 약국과 동네 의원은 모두 몰락하고 있다. 이것은 낯선 제도 도입에 대한 준비 부족으로 인한 초기의 단순한 시행 착오 때문 만은 아닌 것 같다.

과거 어떤 정권에서도 이렇게 대다수의 민중을 물 먹이며 극 소수의 부 축적을 위해 정부, 언론, 시민 단체가 총 동원된 적은 없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일부 자금 동원력이 풍부한 약사 들을 재벌로 만들어 주는 것이 우리 사회에 도대체 무슨 이득이 된단 말인가? 과거 정치권에 의한 재벌 육성은 대자본에 의한 우리나라 산업의 확대 재생산이라는 긍정적인 면이라도 있었는데---.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인가?

바로 지금 한국의 젊은 의사 들은 1차와 2차 의사들의 전쟁을 수행하면서 그 동안 그들이 보지 못한 것 들을 보기 시작하고 있다. 경제적 상실감과 1차 전쟁에 대한 패배감, 자신의 미래에 대한 자포자기등에서 서서히 극복하고 있다. 그들은 이제 자신 들이 결코 포기 할 수 없는 이념이 무엇인지를 확고히 하기 시작하였고 반 민중적인 약사법 개정이라는 상장적인 사건을 통해 완벽한 의약 분업의 최대 수혜자인 민중을 향해 서서히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정부의 당근을 단호히 거부 할 수 있었고 이 전쟁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다. 의권 쟁취라 함은 반 민중적 약사법 개정을 통해 의사가 경제적 이권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스스럼 없이 민중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의 획득을 의미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싶다.

.1차 전쟁에서 히포크라테스와 허준 컴프렉스를 극복한 젊은 의사 들은 자신들도 무엇 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닳았다. 그들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전문적이고 보수적인 의사 집단에 의사란 무엇인가? 왜 나는 의사가 되려고 하는가? 등의 의사 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젊은 의사 들은 참의사로서 그들의 존재 이유가되는 환자 즉 민중에게로 다가가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다.

연대 집회 후 지금 의사 들의 전쟁은 중요한 전환점에 이른 것 같다. 정부-언론은 의사를 대중으로부터 철저히 분리 시키고 있다. 남북 화해라는 축제 분위기에 번번히 찬물을 끼얹는 의사 들이 그저 밉기만 할 것이다. 심지어는 노골적으로 의사에 대한 국민 들의 적개심을 부추기고 있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언제나 부도덕한 정권과 언론은 자기에 대항하는 적들을 그런 방법으로 다루어 왔다. 그들을 설득하려고 하는 것은 부질 없는 짓이다

이제 젊은 의사 들이 이 전쟁에서 자기 들의 주적이 누구이고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을 반드시 지켜야만 되는지를 아는 것 같다. 아마도 이 전쟁에서 젊은 의사 들이 이긴다면 의사 집단 전체는 크게 변하여 민중울 향해 다시 태어 날 것이며, 지금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는 우리 사회의 지식인 집단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젊은 의사 들이 이기기를 바란다. 그들이 허 준처럼 진정으로 민중과 하나가 되는 의사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며, 우리 사회 구성원이면 누구나 바라듯이 이땅이 진정으로 히포크라테스 정신이 실현 가능한 곳이 되기를 원한다.

다시 태어 나기 위해서는 언제나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자신들을 위해서 싸우고 있는지도 모르는 대부분의 민중의 고통은 참으로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민중 속으로 다가가야 하는데 민중의 고통을 외면해야 되다니!

어차피 어떤 전쟁에서나 자기가 보유한 무기를 가지고 싸울 수 밖에 없다. 지하철 노조는 지하철 가지고 싸우고, 금융 노련은 은행 가지고 싸우고, 병원 노련은 병원 가지고 싸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의사는 환자의 생명을 가지고 끝가지 싸울 수는 없다. 따라서 의사 들은 마지막 까지 위급한 환자 들의 생명을 지켜 준다는 확신을 민중에게 주고 또한 실지로 그렇게 해야만 한다. 전면전에 뒤이은 성급한 응급 진료의 철수는 1차 전쟁처럼 오래 버틸 수가 없다. 그것 보다는 병원 밖에서 의사로써 민중에 다가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이 전쟁의 기본적인 이념에 합당하며 이런 의미에서 무료 진료소의 설치는 매우 타당하다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적들의 집중 포화와 정치적 공세에서 살아 남아 마지막 승리를 얻기 위해서는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부터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중요한 것은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철의 전공의”. 모처럼 화끈한 말이다. 모처럼 화끈한 전쟁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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