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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가림

김종렬(09) 작성일 05-03-25 10:33 9,396회 3건

본문

옛 시골집을 털고 새집을 짓고보니, 무엇보다 깨끗하고 편리하다.
옛날처럼 재래식 화장실을 들락거리지 않아도 되고,
물 한그릇을 마시기 위해 마루와 죽담을 거쳐 정지로 드나드는
불편함은 이제 사라졌다. 꼬맹이들이 어지간히 흙먼지를 덮어쓰고 와도
따슨 물 쏟아지는 샤워실이 있으니 걱정할 게 없다.
굳이 방문을 열지 않아도 사방으로 난 큰 유리창으로 바깥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모든 것이 실내에서 아주 수월하게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감이 가지 않는다.
집은 근사한데, 옛집처럼 어릴 적 곳곳에 배인 추억이며 정나미를 찾아볼 수 없다.
이웃에서는 새집을 부러워하며 칭찬을 하지만, 나는 오히려 요즘 옛집이 그립다.
그래서 거실이나 서재에 혼자 있을 땐 줄곧 옛집의 모습과 얽힌 사연들을
떠올리곤 한다.

조카놈들과 아내와 제수씨들에게는 그저 편리하고 아늑하니 더없이 좋을테지만,
언제나 내 마음 한구석은 허전하다. 때로는 옛집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을 때도 있다.
검게 그을린 정짓문과 부뚜막, 언제 윤이 나 반짝거리던 넓다란 마루,
삐걱거리던 미닫이 방문, 벌겋게 달아오르던 쇠죽솥 아궁이, 어딘가 주전부리가 늘 숨어있던 곳간, 지게와 쟁기며 연장들이 종일 드나들던 헛간, 그리고 퀴퀴하지만 가장 편안하던 뒷간과
장작을 패던 모퉁이...
모두가 이젠 진한 그리움의 대상이다.
모든 것이 깔끔하고 편리한데도,
낯을 가려서인지 나는 지난 옛집이 자꾸 그립다.
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만...
우리 홈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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