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1.26 낙동정맥 20구간(석개재-한나무재) 산행기
전태우(09)
작성일
05-11-30 15:49 9,421회
2건
본문
낙동정맥 20구간(삼척)
석개재, 용인등봉, 삿갓봉, 934.5봉, 한나무재 구간
(봉화군 석포면, 울진군 서면, 삼척시 가곡면 일대)
한나무재에 도착하여
<img src="http://www.hakgo.net/board/data/file/album/f3751772_한나무재에%20도착하여.jpg">
그림 한나무재에 도착하여
경상북도 울진 땅, 낙동정맥 기슭의 깊디깊은 산골인 소광리는 소나무 중의 소나무 인 금강송이 군락을 이뤄 자라는 곳이다. 삿갓재와 백병산 기슭의 1,800ha에 이르는 넓은 산지에 빼곡하게 자라고 있다. 나무의 평균 나이는 약 80년인데, 이 가운데 10여 그루는 500년이 훌쩍 넘었다. 조선 숙종 6년에 이 소나무숲을 황장봉산이라 정하고 보호한 덕이다. 강릉, 삼척, 울진을 잇는 산간지역에 많이 자라는 금강송 가운데도 소광리 금강송은 가장 좋은 혈통을 자랑한다.
금강송은 키가 크고 곧으며, 위와 아래의 폭도 거의 일정하다. 하늘을 향하여 시원스레 쭉쭉 뻗은 모습은 한마디로 기골이 장대하다. 또 껍질이 얇으면서도 나이테 간격이 좁고 비교적 일정해서 비뚤어짐이 거의 없고, 몸통 속이 황금색을 띠고 있어서 매우 고급스럽기까지 하다. 평균 수명도 다른 소나무에 비해 10년 정도가 길어 평균 70년 이상이다. 금강송 한 그루에선 웬만한 집한 채는 거뜬히 지을 정도의 목재도 나온다 한다. 경북궁의 새 건물들도 이곳에서 나오는 금강송으로 지었다.
명칭도 다양하다. 여느 소나무보다 껍질이 유별나게 붉어 적송이요, 속이 누렇게황금빛을 띤다하여 황장목이라 했다. 20세기 중반엔 봉화군 춘양역에서 집하되어 온 소나무라 해서수도권 상인들이 춘양목이라 불렀고, 숲으로 들어가는 길에 이 지역이 황장목으로 보호되었음을 증명하는 황장봉계표석도 볼 수 있다.
그림 고드름을 따는 유명진
1. 산행일지
(1) 산행일시 : 2005. 11. 26. 11:00 토요일. 맑음.
(2) 참 석 자 : 전태우, 심민구, 백남기, 유명진(이상4명)
(3) 산 위 치 : 경북 봉화군 석포면, 울진군 서면, 삼척시 가곡면 일대
(4) 소요시간 : 14시간 30분
통고산휴양림출발(06:30) - 석개재도착(08:00) - 석개재 산행시작(08:00) - 한나무재 도착(14:26) - 북구청도착(20:30) - 집도착(21:00)
그림 답운치-석개재 고도표
(5) 산행코스 : 6시간 26분
- 08:00 석개재 산행초입(강원도 경계)
- 09:06 묘봉(1167.6) 갈림길
- 09:33 용인등봉(1124)
- 10:38 임도(점심시간 28분)
- 11:38 석포, 대광천, 소광천 삼거리(소광천으로)
- 12:00 삿갓재(1191.1)
- 12:08 전곡, 대광천, 소광천 삼거리(전곡방향으로)
- 12:26 임도 끝나는 부분
- 14:26 한나무재
(6) 산행거리 : 21.2km
석개재 - 2.7km - 묘봉삼거리 - 1.2km - 용인등봉 - 4.5km - 삿갓봉재 - 12.8km - 한나무재
(7) 교통수단 : 승합차 1대
- 백남기 승합차
(8) 산행비용 :
그림 가슴까지 오는 산죽(조릿대)길에서
2. 산행후기
이번 산행 구간은 석개재에서 한나무재까지 21.2km로 이며 석개재의 고도가 900여m 이다. 묘봉갈림길까지 가파르고, 임도를 따라 40여분을 걸어서 1136.3봉을 지나지 않아 시간을 단축할 수가 있다. 그래서 산행시간을 예측을 할 수가 없다. 산행인들의 자료를 검색하니 정확하지가 않았다. 임도를 따라 걸어가는 시간과 1136.3봉을 거쳐서 가는 두가지 길이 있다. 우리들은 쉬운 임도를 따라 걸어가기로 하였다. 그리고 서두에서 이야기가 있지만 이곳에는 금강송이 유명하다.
새벽 04:30분 벨소리와 함께 일어난다. 석개재까지 갈려면 차로 1시간이상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침밥도 해야하고, 점심도 가져가야 한다.
모두들 피곤한 모양이다. 5시가 되어야 모두 일어난다. 명진이가 아침밥을 위해 어제 씻어 놓은 밥을 밥솥에 놓고 스위치를 넣는다. 그리고 어제 먹었던 해물탕과 집에서 가져온 시락국을 데우고, 김이며 김치 그리고 밑반찬을 차린다. 하나둘 세면을 하고 차려진 아침을 05:30분부터 시작하였다. 오늘 남기는 우리를 석개재까지 태워주고 다시 돌아와 잠시 쉬고 점심을 먹은 후 한나무재로 찾아오기로 하였다.
그림 이른 아침식사(통고산 자연휴양림)
06:30분 통고산휴양림을 출발한다. 36번국도를 지나 답운재를 지나면서 쌍전리로 들어가야 굴전고개와 한나무재가 나오는데 너희들은 북쪽으로 4kmwjd도 더 간 전곡리의 전천동으로 나왔다고 한다. 어제의 고생을 되새기게 한다.
그리고 이곳은 차도 가지 않는 기차역이 있다. 승부역, 우리나라 최고의 오지역이라 한다. 낙동강을 옆에 두고 기찻길이 석포에서 현동까지 나아 있다.
36번 국도는 31번국도와 35번국도가 만나서 가우언도의 경계인 석포면을 지나간다. 아침의 기운이 안개로 나타나는가 하면, 하얀 서리가 들판에 내려 앉아 있다. 잠시 길을 잃어 파출소에 들러 길을 물어 석포면에 도착하였다. 다시 910번 지방도를 따라 석개재에 도착하니 시간이 벌써 8시가 다가온다. 1시간 반을 걸렸던 셈이다.
그런데 대구 번호판을 단 승합차가 한대 서 있다. 우리보다 먼저 출발한 정맥팀이 있구나 하였다. 석개재에는 강원도와 경계임을 표시하는 이정표가 있다. 도로 양쪽에 곰 한마리씩 조각상이 있다. 산불강조기간이라 등산로를 폐쇄한다는 현수막이 눈에 띤다.
그림 석개재에 도착하여
08:00분 산행준비를 마치고 남기와 인사를 나누고 임도를 따라 산행을 시작하였다. 10여분이 지나자 정맥길과 다시 만난다. 그러나 우리들은 조금이나마 편하자고 임도를 따라 걸어갔다. 그러나 한 능선에 도착하자 우리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다시 내려오면서 능선을 올랐다. 다시 임도로 내려와 리본이 있는 곳에서 다시 산행을 시작하였다.
또 배운다. 잔머리를 돌리지 말자.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자.
능선에 올라서니 우리들의 선택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알 수가 있다. 반대방향인 것이다.
묘봉갈림길까지는 심한 경사면이다. 나는 아침에 화장실을 못 간 결과가 나타난다. 배설을 하고 나니 몸이 한결 가벼워진다. 친구들과는 5분정도의 간격이다. 오르막에는 정상을 향하여 한번 확인을 하고 땅만 바라보고 올라간다. 20여분이 사람의 숨을 막아버리는 것 같다. 그러나 이제까지 고생을 한 결과, 약간의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그림 묘봉(1167.6) 갈림길에서
09:06분 묘봉(1167.6) 갈림길에 표시가 있다. 숨을 고르면서 400m 정도이지만 답사를 못하고 바로 정맥길로 향하여 이동을 한다.
가슴까지 오는 산죽(조릿대)을 헤쳐나가는 길은 캄캄한 밤에 길을 찾는 것 같이 길이 보였다 보이지 않다가 한다. 용인등봉까지 25분 정도 걸리는 거리이다. 어떻게 이름이 지어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명칭이 있는 것은 우리들이 지도의 위치에 표시를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09:33분 용인등봉에 도착한다. 나뭇가지 사이로 묘봉의 봉우리에 소나무 한그루가 유독 눈에 띤다. 사과를 하나 나누어 먹고 바로 출발을 한다.
작은 봉우리가 다가왔다가 사라진다. 우리들을 가로막는 것은 이제는 없어 보인다. 자연에 순응하고, 오르고 내림을 반복하면 숨소리도 거칠어지다가 바로 편안하게 되어진다.
그림 용인등봉(1124)에 도착하여
10:38분 임도에 도착한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이정표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갈 방향은 알 수가 있다. 조금을 가니 아래쪽으로 임도가 이어진다.
11:07분 따뜻하고 양지 바른 곳에 자리를 잡았다. 점심을 먹기 위함이다. 아침에 보온 도시락에 따뜻한 밥을 넣고 그 위에 해물로 된 음식(후리가케)을 뿌려 먹기 좋게 하였다. 도시락을 여니 아직도 따뜻한 온기가 가득 하였다. 25분간의 식사를 마치고 다시 임도를 걸었다.
불심골로 빠지는 임도 삼거리가 나오고, 다시 소광천, 대광천, 석포로 가는 삼거리가 나왔다. 소광천의 임도 위로 삿갓봉(1119.1)이 바로 옆에 있었으나 우리들은 임도를 따라 걸어갔다.
30분을 임도를 따라 걸으니 또 전곡, 대광천, 소광천으로 가는 임도 삼거리가 나온다. 어제의 고생했던 전곡리로 우리들은 발길을 옮겼다. 명진이 임도 주위에 흘러내리는 고드름을 따서 우리들에게 주었다. “보약이라나” 10분 정도가 능선 위의 임도에 정맥의 리본이 양쪽으로 붙어있다.
그림 삿갓재인 임도 삼거리에서 소광천 방햔으로
이곳부터 임도는 끝이 나고 한나무재까지 능선을 따라 걸어가야 한다. 모두들 좋은 시절은 같다고 한다.
뒤돌아보니 우리들이 걸어왔다. 임도길이 마치 뱀이 기어가는 것처럼 꾸불꾸불하게 나아있다. 이런 오지에는 임도가 꼭 필요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12:26분 지금부터 꼬박 2시간을 걸어야 한나무재까지 도착을 한다. 지도와 고도표와 산행일지를 보니 5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도착을 한다.
시간이 지나야 도착을 한다. 가만히 있으면 목적지에 도착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들은 쉬지 않고 열심히 걸었다. 산행일지에는 2시간 30분으로 나와 있고, 지도상에는 2시간 50분으로 나와 있다. 시간상으로나 보아도 쉬지 않고 걸었음을 나타낸다.
기다리는 남기도 생각이 나고 항상 산행 끝머리에 나오는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 군가도 생각이 난다.
산행을 할 때 할 말이 없으면 군대이야기이다. 포병을 나온 심민구, 21사단 땅개를 전역한 유명진, 육본의 운전병을 한 백남기, 군 직할의 군견병인 전태우 서로 할 이야기는 많다.
그림 한나무재에 도착하여 fMtM의 현수막을 들고
14:26분 명진이가 한나무재에 도착한다. 백남기가 차를 대기하고 기다리고 있다. 내가 바로 도착하고 민구가 도착을 한다. 백남기 왈 “ 40분전에 대구 정맥팀이 지나가면서 자기들은 새벽 4시에 출발을 하여 9시간 40분이 걸렸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도착을 하니 너희들 정말 빨리 걸렀구나?” 하였다. 우리들은 8시에 출발을 하였으니 6시간 26분이 걸린 셈이다.
백남기 왈 “이곳을 찾아오는데 정말 고생을 많이 하였다고 한다. 촌민가에 가서 물으니 사람이 그립다고 한다. 얼마나 오지이면 지금시대에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지? 그리고 이제까지 다녔지만 이만큼 오지는 처음이라고 한다. 또 지도를 보니 너희들 어제 정말 고생 많이 했다고 한다.” 임도를 따라 내려오면서 부드럽게 군대에서 운전을 한 사람처럼 운전을 잘하였다.
어제 이곳 임도 삼거리인 광회, 소광, 전곡에서 우리들은 전곡으로 빠졌지만, 오늘은 광회쪽으로 운행을 하였다. 그러나 오르막길을 오르면서 어제 우리가 판단한 전곡방향이 올바른 길이라는 것을 제삼 확인한 결과가 됨 셈이다. 한없이 오르는 오르막길, 차로 10여분을 움직였으니, 걸었으면 줄잡아 40~50분 정도 그리고 백남기를 만날 수 있다는 결과도 없었다.
능선 위에 오르고 다시 내려가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좌측으로 가야지 어제 이야기한 굴전고개가 나온다고 하였다. 이제야 모든 것이 확인하게 나타난다.
선임자들의 구간 나눔이 왜 그렇게 한 것인지, 우리들도 지나고 나서 “애매랑재에서 답운치까지, 석개재에서 답운치까지”라는 구간이 나옴을 알았다.
하루일을 마쳤다. 어제 먹다가 남은 병어와 삼치로 또 차안에서 자축을 한다.
그림 병어와 삼치로 차안에서 조촐한 자축
마지막으로 경주 입실의 송원식당에 도착하여 1박2일의 산행을 자축하면서 20:30분 북구청에 도착하여 서로 인사를 하고 다음주에 만날 것을 약속하며 헤어진다.
명진이는 11월 29일 부산의 백양산, 고담봉, 장군봉, 계명봉의 구간을 마무리하기 위해 정맥 리본을 가지고 간다.
모두들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고, 책임감있는 모습이 정말 자랑스럽다.
수고했다. 친구들아!
석개재, 용인등봉, 삿갓봉, 934.5봉, 한나무재 구간
(봉화군 석포면, 울진군 서면, 삼척시 가곡면 일대)
한나무재에 도착하여
<img src="http://www.hakgo.net/board/data/file/album/f3751772_한나무재에%20도착하여.jpg">
그림 한나무재에 도착하여
경상북도 울진 땅, 낙동정맥 기슭의 깊디깊은 산골인 소광리는 소나무 중의 소나무 인 금강송이 군락을 이뤄 자라는 곳이다. 삿갓재와 백병산 기슭의 1,800ha에 이르는 넓은 산지에 빼곡하게 자라고 있다. 나무의 평균 나이는 약 80년인데, 이 가운데 10여 그루는 500년이 훌쩍 넘었다. 조선 숙종 6년에 이 소나무숲을 황장봉산이라 정하고 보호한 덕이다. 강릉, 삼척, 울진을 잇는 산간지역에 많이 자라는 금강송 가운데도 소광리 금강송은 가장 좋은 혈통을 자랑한다.
금강송은 키가 크고 곧으며, 위와 아래의 폭도 거의 일정하다. 하늘을 향하여 시원스레 쭉쭉 뻗은 모습은 한마디로 기골이 장대하다. 또 껍질이 얇으면서도 나이테 간격이 좁고 비교적 일정해서 비뚤어짐이 거의 없고, 몸통 속이 황금색을 띠고 있어서 매우 고급스럽기까지 하다. 평균 수명도 다른 소나무에 비해 10년 정도가 길어 평균 70년 이상이다. 금강송 한 그루에선 웬만한 집한 채는 거뜬히 지을 정도의 목재도 나온다 한다. 경북궁의 새 건물들도 이곳에서 나오는 금강송으로 지었다.
명칭도 다양하다. 여느 소나무보다 껍질이 유별나게 붉어 적송이요, 속이 누렇게황금빛을 띤다하여 황장목이라 했다. 20세기 중반엔 봉화군 춘양역에서 집하되어 온 소나무라 해서수도권 상인들이 춘양목이라 불렀고, 숲으로 들어가는 길에 이 지역이 황장목으로 보호되었음을 증명하는 황장봉계표석도 볼 수 있다.
그림 고드름을 따는 유명진
1. 산행일지
(1) 산행일시 : 2005. 11. 26. 11:00 토요일. 맑음.
(2) 참 석 자 : 전태우, 심민구, 백남기, 유명진(이상4명)
(3) 산 위 치 : 경북 봉화군 석포면, 울진군 서면, 삼척시 가곡면 일대
(4) 소요시간 : 14시간 30분
통고산휴양림출발(06:30) - 석개재도착(08:00) - 석개재 산행시작(08:00) - 한나무재 도착(14:26) - 북구청도착(20:30) - 집도착(21:00)
그림 답운치-석개재 고도표
(5) 산행코스 : 6시간 26분
- 08:00 석개재 산행초입(강원도 경계)
- 09:06 묘봉(1167.6) 갈림길
- 09:33 용인등봉(1124)
- 10:38 임도(점심시간 28분)
- 11:38 석포, 대광천, 소광천 삼거리(소광천으로)
- 12:00 삿갓재(1191.1)
- 12:08 전곡, 대광천, 소광천 삼거리(전곡방향으로)
- 12:26 임도 끝나는 부분
- 14:26 한나무재
(6) 산행거리 : 21.2km
석개재 - 2.7km - 묘봉삼거리 - 1.2km - 용인등봉 - 4.5km - 삿갓봉재 - 12.8km - 한나무재
(7) 교통수단 : 승합차 1대
- 백남기 승합차
(8) 산행비용 :
그림 가슴까지 오는 산죽(조릿대)길에서
2. 산행후기
이번 산행 구간은 석개재에서 한나무재까지 21.2km로 이며 석개재의 고도가 900여m 이다. 묘봉갈림길까지 가파르고, 임도를 따라 40여분을 걸어서 1136.3봉을 지나지 않아 시간을 단축할 수가 있다. 그래서 산행시간을 예측을 할 수가 없다. 산행인들의 자료를 검색하니 정확하지가 않았다. 임도를 따라 걸어가는 시간과 1136.3봉을 거쳐서 가는 두가지 길이 있다. 우리들은 쉬운 임도를 따라 걸어가기로 하였다. 그리고 서두에서 이야기가 있지만 이곳에는 금강송이 유명하다.
새벽 04:30분 벨소리와 함께 일어난다. 석개재까지 갈려면 차로 1시간이상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침밥도 해야하고, 점심도 가져가야 한다.
모두들 피곤한 모양이다. 5시가 되어야 모두 일어난다. 명진이가 아침밥을 위해 어제 씻어 놓은 밥을 밥솥에 놓고 스위치를 넣는다. 그리고 어제 먹었던 해물탕과 집에서 가져온 시락국을 데우고, 김이며 김치 그리고 밑반찬을 차린다. 하나둘 세면을 하고 차려진 아침을 05:30분부터 시작하였다. 오늘 남기는 우리를 석개재까지 태워주고 다시 돌아와 잠시 쉬고 점심을 먹은 후 한나무재로 찾아오기로 하였다.
그림 이른 아침식사(통고산 자연휴양림)
06:30분 통고산휴양림을 출발한다. 36번국도를 지나 답운재를 지나면서 쌍전리로 들어가야 굴전고개와 한나무재가 나오는데 너희들은 북쪽으로 4kmwjd도 더 간 전곡리의 전천동으로 나왔다고 한다. 어제의 고생을 되새기게 한다.
그리고 이곳은 차도 가지 않는 기차역이 있다. 승부역, 우리나라 최고의 오지역이라 한다. 낙동강을 옆에 두고 기찻길이 석포에서 현동까지 나아 있다.
36번 국도는 31번국도와 35번국도가 만나서 가우언도의 경계인 석포면을 지나간다. 아침의 기운이 안개로 나타나는가 하면, 하얀 서리가 들판에 내려 앉아 있다. 잠시 길을 잃어 파출소에 들러 길을 물어 석포면에 도착하였다. 다시 910번 지방도를 따라 석개재에 도착하니 시간이 벌써 8시가 다가온다. 1시간 반을 걸렸던 셈이다.
그런데 대구 번호판을 단 승합차가 한대 서 있다. 우리보다 먼저 출발한 정맥팀이 있구나 하였다. 석개재에는 강원도와 경계임을 표시하는 이정표가 있다. 도로 양쪽에 곰 한마리씩 조각상이 있다. 산불강조기간이라 등산로를 폐쇄한다는 현수막이 눈에 띤다.
그림 석개재에 도착하여
08:00분 산행준비를 마치고 남기와 인사를 나누고 임도를 따라 산행을 시작하였다. 10여분이 지나자 정맥길과 다시 만난다. 그러나 우리들은 조금이나마 편하자고 임도를 따라 걸어갔다. 그러나 한 능선에 도착하자 우리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다시 내려오면서 능선을 올랐다. 다시 임도로 내려와 리본이 있는 곳에서 다시 산행을 시작하였다.
또 배운다. 잔머리를 돌리지 말자.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자.
능선에 올라서니 우리들의 선택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알 수가 있다. 반대방향인 것이다.
묘봉갈림길까지는 심한 경사면이다. 나는 아침에 화장실을 못 간 결과가 나타난다. 배설을 하고 나니 몸이 한결 가벼워진다. 친구들과는 5분정도의 간격이다. 오르막에는 정상을 향하여 한번 확인을 하고 땅만 바라보고 올라간다. 20여분이 사람의 숨을 막아버리는 것 같다. 그러나 이제까지 고생을 한 결과, 약간의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그림 묘봉(1167.6) 갈림길에서
09:06분 묘봉(1167.6) 갈림길에 표시가 있다. 숨을 고르면서 400m 정도이지만 답사를 못하고 바로 정맥길로 향하여 이동을 한다.
가슴까지 오는 산죽(조릿대)을 헤쳐나가는 길은 캄캄한 밤에 길을 찾는 것 같이 길이 보였다 보이지 않다가 한다. 용인등봉까지 25분 정도 걸리는 거리이다. 어떻게 이름이 지어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명칭이 있는 것은 우리들이 지도의 위치에 표시를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09:33분 용인등봉에 도착한다. 나뭇가지 사이로 묘봉의 봉우리에 소나무 한그루가 유독 눈에 띤다. 사과를 하나 나누어 먹고 바로 출발을 한다.
작은 봉우리가 다가왔다가 사라진다. 우리들을 가로막는 것은 이제는 없어 보인다. 자연에 순응하고, 오르고 내림을 반복하면 숨소리도 거칠어지다가 바로 편안하게 되어진다.
그림 용인등봉(1124)에 도착하여
10:38분 임도에 도착한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이정표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갈 방향은 알 수가 있다. 조금을 가니 아래쪽으로 임도가 이어진다.
11:07분 따뜻하고 양지 바른 곳에 자리를 잡았다. 점심을 먹기 위함이다. 아침에 보온 도시락에 따뜻한 밥을 넣고 그 위에 해물로 된 음식(후리가케)을 뿌려 먹기 좋게 하였다. 도시락을 여니 아직도 따뜻한 온기가 가득 하였다. 25분간의 식사를 마치고 다시 임도를 걸었다.
불심골로 빠지는 임도 삼거리가 나오고, 다시 소광천, 대광천, 석포로 가는 삼거리가 나왔다. 소광천의 임도 위로 삿갓봉(1119.1)이 바로 옆에 있었으나 우리들은 임도를 따라 걸어갔다.
30분을 임도를 따라 걸으니 또 전곡, 대광천, 소광천으로 가는 임도 삼거리가 나온다. 어제의 고생했던 전곡리로 우리들은 발길을 옮겼다. 명진이 임도 주위에 흘러내리는 고드름을 따서 우리들에게 주었다. “보약이라나” 10분 정도가 능선 위의 임도에 정맥의 리본이 양쪽으로 붙어있다.
그림 삿갓재인 임도 삼거리에서 소광천 방햔으로
이곳부터 임도는 끝이 나고 한나무재까지 능선을 따라 걸어가야 한다. 모두들 좋은 시절은 같다고 한다.
뒤돌아보니 우리들이 걸어왔다. 임도길이 마치 뱀이 기어가는 것처럼 꾸불꾸불하게 나아있다. 이런 오지에는 임도가 꼭 필요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12:26분 지금부터 꼬박 2시간을 걸어야 한나무재까지 도착을 한다. 지도와 고도표와 산행일지를 보니 5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도착을 한다.
시간이 지나야 도착을 한다. 가만히 있으면 목적지에 도착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들은 쉬지 않고 열심히 걸었다. 산행일지에는 2시간 30분으로 나와 있고, 지도상에는 2시간 50분으로 나와 있다. 시간상으로나 보아도 쉬지 않고 걸었음을 나타낸다.
기다리는 남기도 생각이 나고 항상 산행 끝머리에 나오는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 군가도 생각이 난다.
산행을 할 때 할 말이 없으면 군대이야기이다. 포병을 나온 심민구, 21사단 땅개를 전역한 유명진, 육본의 운전병을 한 백남기, 군 직할의 군견병인 전태우 서로 할 이야기는 많다.
그림 한나무재에 도착하여 fMtM의 현수막을 들고
14:26분 명진이가 한나무재에 도착한다. 백남기가 차를 대기하고 기다리고 있다. 내가 바로 도착하고 민구가 도착을 한다. 백남기 왈 “ 40분전에 대구 정맥팀이 지나가면서 자기들은 새벽 4시에 출발을 하여 9시간 40분이 걸렸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도착을 하니 너희들 정말 빨리 걸렀구나?” 하였다. 우리들은 8시에 출발을 하였으니 6시간 26분이 걸린 셈이다.
백남기 왈 “이곳을 찾아오는데 정말 고생을 많이 하였다고 한다. 촌민가에 가서 물으니 사람이 그립다고 한다. 얼마나 오지이면 지금시대에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지? 그리고 이제까지 다녔지만 이만큼 오지는 처음이라고 한다. 또 지도를 보니 너희들 어제 정말 고생 많이 했다고 한다.” 임도를 따라 내려오면서 부드럽게 군대에서 운전을 한 사람처럼 운전을 잘하였다.
어제 이곳 임도 삼거리인 광회, 소광, 전곡에서 우리들은 전곡으로 빠졌지만, 오늘은 광회쪽으로 운행을 하였다. 그러나 오르막길을 오르면서 어제 우리가 판단한 전곡방향이 올바른 길이라는 것을 제삼 확인한 결과가 됨 셈이다. 한없이 오르는 오르막길, 차로 10여분을 움직였으니, 걸었으면 줄잡아 40~50분 정도 그리고 백남기를 만날 수 있다는 결과도 없었다.
능선 위에 오르고 다시 내려가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좌측으로 가야지 어제 이야기한 굴전고개가 나온다고 하였다. 이제야 모든 것이 확인하게 나타난다.
선임자들의 구간 나눔이 왜 그렇게 한 것인지, 우리들도 지나고 나서 “애매랑재에서 답운치까지, 석개재에서 답운치까지”라는 구간이 나옴을 알았다.
하루일을 마쳤다. 어제 먹다가 남은 병어와 삼치로 또 차안에서 자축을 한다.
그림 병어와 삼치로 차안에서 조촐한 자축
마지막으로 경주 입실의 송원식당에 도착하여 1박2일의 산행을 자축하면서 20:30분 북구청에 도착하여 서로 인사를 하고 다음주에 만날 것을 약속하며 헤어진다.
명진이는 11월 29일 부산의 백양산, 고담봉, 장군봉, 계명봉의 구간을 마무리하기 위해 정맥 리본을 가지고 간다.
모두들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고, 책임감있는 모습이 정말 자랑스럽다.
수고했다. 친구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