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리산 외유를
다녀와서,,,,,, ]
1.일 시: 2006년 1월
20~22일(태화로타리 20일 23시 출발~22일 18시도착)
2.코 스:
성삼재(05:30)->노고단(1507m)->반야봉(1733m)->토끼봉(1534m)->
명선봉(1586m)->연하천산장->형제봉(1442m)->벽소령산장->영신봉(1652m)->
세석산장(17:30~07:10)->촛대봉(1703m)->연하봉(1667m)->장터목산장->
제석봉1806m)->천왕봉(1915.4m,10:00)->로타리산장(법계사)->중산리(22일
13:00)
(총34km)
3.일행들: SK산악회 外 20명(최연소
중2년생)
1년 반전 여름날 설악공룡 안내산행 가다 태풍으로 설악산 입산 통제라 하여 얼떨결에 지리산
무박종주를 겁없이 도전하여 실패한 뼈 아픈 상처가 있었기에 언젠가 다시 함 가자고 벼르던 중 함께 하자는 친구의 꼬임에 선뜻 동의를
하고 만성고질병 무릎통증에 대비한 케토톱, 무릎보호대 등을 준비하고 지리산을 향해 다가 갔다.
<05:30분 성삼재를 출발, 날은 봄날처럼 따뜻하고 맑은 날씨로 기대했던 눈꽃은 어느
한곳에서도 찾아 볼수없었다, 첨 만나는 노고단 이정표를 보고 거리를 생각하니 저 긴 구간을 언제 다 갈까 걱정이다, 눈길은 멀어도 발길은 짧다
했던가?>
반야(般若峯)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과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의 경계에
있는 반야봉은 높이에 관계없이 지리산의 제2봉으로 불리며 반야란 산스크리트의 prajna를 음역한 것으로 지혜를 뜻하고 대승불교에서 반야란
반야경(般若經)에서 강조하는 공(空)의 사상을 말하므로 곳 어리석은자가 머물면 무심의 지혜를 득하게 되는 원래의 지리산의 뜻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전설에 의하면 천왕봉 마고할미와 반야(般若)도사와의 만남으로 반야는 이곳 반야봉에서 수도함으로 이별이 시작되었고
마고할미는 남편반야를 찾아 8딸을 8도로내려 보내며 이들은 훗날 팔도무당의 시조가 되었다한다. 이들의 만남은 생전에 이뤄지지 못했고 마고할미는
남편반야를 그리며 나무껍질을 벗겨 옷을만든다 마고할미는 죽고 갈기갈기 찢긴나무옷은 바람에 날려 반야봉풍란이 되었다는 슬픈 전설을 간직한 산이기도
하다" ----특히 종주구간 끝까지 그림자 처럼 따라 다니면서 등뒤에서
나를 굽어 보는 듯 하였다
<노루목에서
58개띠 동호회원 들과 마주치니 노루는 어디 가고 개들만 이리 많노 하여 한 바탕 웃음을 피우고 바리 반야봉에 오른다, 노고단 방향의 풍경 멀리
무등산과 덕유산이 보이는 강?>
삼도봉(三道峯)
삼도봉은 경남과 전남·북을 구분짓는 봉우리이다. 반야봉 바로
아래 해발 1,550m로 지리산의 수많은 준봉 가운데 특이할만하게 눈에 띄는 봉우리는 아니다. 반야봉의 그늘에 가려 아주 이름없고 별다른 특징을
찾을 수 없는 산세지만 지리산을 삼도로 구분하는 기점이라는데서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삼도를 나누는
삼도봉의 지명은 그동안 삼도봉이란 지명으로 불리지 못하고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지리산 일원에 이정표를 세우면서부터 삼도봉으로 명명됐다. '낫날봉'
'날라리봉' '늴리리봉'등 다양하게 불리던 이 봉우리가 삼도의 경계기점이라 해 '삼도봉'으로 명명되었다.
원래 이 봉우리는
정상 부분의 바위가 낫의 날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해 낫날봉으로 불렸다한다. 낫날이란 표현의 발음이 어려운 탓에 등산객들 사이에선
'낫날봉'이 '날라리봉' 또는 '늴리리봉' 등으로 더 알려져 있었다.
<삼도봉 정상
표시판, 꼭지만 얼마나 만졌나 마니 닳은,,,,,, >
<연하천을 가는
중간 인가?, 사진 보다는 실제 모습이 표현하기 힘든 적나라 한 반야봉의 거시기 한 자태,,,,,,끝까지 따라 다녀 피하느라 혼
났습니다ㅎㅎㅎㅎ>
<글세요 울퉁불퉁
형제봉이던 강?, 기억이 좀,,,,,,나뭇가지도 바위를 닮았나 비비꼬고 있네요 >
<형제봉을 지나
지척같은 벽소령과 멀리 천왕봉은 보이는데 발길은 무겁기만 하고 >
<당일 마지막
종착지 세석을 향해 가는 중 선비샘은 얼었나 아님 가뭄인가 물 흔적 하나없고 칠선봉을 지나 영신봉을 향하는 데 왠 이상한 비행접시 같은 구름이
앞을 막는다>
<세석평전을 눈
앞에 두고 영신봉에서 일몰을 기다리는데 기온은 급격히 떨어지고 바람도 차가워 진다, 일몰을 잡기위해 사진찍는 사람들도 몇 명이 보이기도
한다>
<운이 좋았나 비록
정상 천왕봉은 아니 였지만 일몰과 일출을 다 볼 수 있었고 첨부터 끝까지 노고단, 반야봉, 천왕봉을 마주 보고 산행 할 수 있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전번 여름 산행에는 보이는 것은 오로지 돌부리엿고 구름과 안개 뿐이었다, 앞만 보고 달렸지 어딘지는 전혀 모르고,,,,,촛대봉의
일출 5분만 당겼더라면 더욱 조았을 걸 하는 아쉬움으로,,,,,,>
<여명이 밝아 오는
촛대봉에서 반야봉으로 방향의 조망,,,,,,>
<연하봉을 향하는
중 매서운 바람과 추위로 양지녁 모퉁이에서 완전무장중,,,,,고사목 옆으로 천왕봉의 위용이 보인다>
<오름길의 마지막
산장 장터목, 지난번 산행에서 무릎통증으로 눈물을 머금고 탈출했던 곳 새삼 감회가 새롭다, 근데 세월의 명성을 실감 했습니다, 흡연장에서 맛나게
한 개피 하고 마지막을 위해 배낭을 다잡는데 아릿다운 아줌씨가 울산 세월에 다니냐고 말을 걸어와서 적쟌이 놀랐지요, 아줌씨는 구체적인 답은
피하고 김승곤 영남알프스에서 대간 한답디다 아마도 한백님은 쉽게 알듯ㅎㅎㅎ>
<마지막 제석봉과
통천문을 지나고 바로 닿을 듯 하지만 쉽게 천왕봉은 허락하지 않는다>
<드뎌 정상, 오랜
기다림과 산행으로 맘은 즐겁고 행복했다, 그래도 반야봉과 노고단은 보인다, 끝까지 함께한 노고단과 반야봉이 이리 높은 줄이야, 멀리 삼천포
앞바다의 사랑도가 보이나요>
<법게사와 3층석탑>
법계사에 내려오는 설화에는 "법계사가 흥하면 일본이 망하고,
법계사가 망하면 일본이 흥한다"고 하여 고려 때 일본인에 의해 절이 전소 된 사적이 있으며 그 이후에도 수차례 침략을 받았으며, 법계사는
보처님을 모시지 않고 진신사리를 모셔 에배하는 법당을 적멸보궁이라 한다, 법계사는 신라 진흥왕 5년(서기 544) 연기조사가 인도에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셔와 봉안한 유서 깊은 사찰로 영산의 지리산 남방의 적멸보궁 도량이다, 신순덕씨에 의해 초라한 초가로 이어오다 1981년 현재의
법당을 중건되어 졌다 또한 산신각 앞에 있는 3층석탑은 보물 제473호로 3.6m의 자연암반을 기단으로 하여 2.5m의 3층 석탑을 올렸다,
전체적인 모양과 만든 수법으로 볼 때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급경사를 굽이굽이
돌아 돌부리만 딛고 하산하다 보니 어느듯 법계사(로타리 산장)이다>
미
<칼바위>
태조 이성계가 등극한 후 자신을 노리는 사람이 지리산의 큰
바위에 은거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한 장수에게 그를 찾아가서 목을 베 오라 명한 바 그 장수가 지리산을 헤메다 칼바위 2km지 점의 큰 바위
아래서 공부하는 사람을 발견하고 칼로 치니 큰위는 갈라져 흠집바위가 되고 칼날은 부러지면서 이 곳 까지 날아와 꽂치면서 하늘을 찌를 듯한 형상의
바위로 변하여 이름을 칼바위라 부른다
<대충 하산
마무리가 되었나 아무리 급해도 할 짓은 해야 된다, 먼저 하산한 일행들은 게의치 않고 어차피 정해진 시간 남았으니 으슥한 계곡을 찾아 깨끗한
물에 몸을 담고 1박2일의 산행을 마무리한다,,,,,그래도 청왕봉은 보인다>
1박3일 간 도상거리 34km, 약16시간 산행을 마무리하며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 지리산의 설국을 보지 못한 것이 그래도 아쉬움 남는다, 하지만 첨부터 끝까지 지리의 모습을 보이게 도와준 날씨에
감사하고 함께 하자 제안한 칭구에 감사하고 삼대째 적선을 해야 한다는 조상에 감사하고 담 또 지리산을 방문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마지막으로
이원규님의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시와 음악으로 감사를 대신합니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 이원규 시, 안치환 노래
행여 지리산에 오르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시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 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 노을을 품으려거든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 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시려 거든
불일 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 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 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 만 오시라
진실로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 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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