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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이야기 - 가면쓴 여자

박창홍(15) 작성일 06-03-18 04:24 9,234회 1건

본문

니체는 『즐거운 학문』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남자는 제멋대로 여자의 이미지를 그렸고, 여자는 그 이미지를 흉내 내어 자신을 만들었다.” 이 독특한 상호작용 속에 어쩌면 서양철학의 근본 문제와 새로운 철학의 가능성이 들어 있는지 모른다. 니체는 남자가 여자에 안달하면서도 여자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가, 진리에 안달하는 철학자가 진리에 도달할 수 없는 이유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혹여 여자를 안다고 말하는 남자, 진리를 안다고 말하는 철학자가 있다 해도, 그가 가진 것은 여자가 아니라 여자에 대한 이미지, 진리에 대한 이미지일 뿐이다.
  니체는 또 『선악의 저편』에서 이렇게 말했다. “진리를 여자라고 가정한다면 어떨까? 모든 철학자들이 독단론자들인 한 그들은 여자에 대해 지극히 미숙한 게 아닐까. 이제까지 그들이 진리에 접근할 때 흔히 쓰던 방식, 즉 대단히 엄숙한 태도로 서투르게 강요하는 건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부적당하지 않은가? 그녀가 마음을 주지 않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여성을 대하는 남성의 미숙함. 그녀의 진정성에 대한 그의 독단적인 상상. 그것이 그로 하여금 그녀를 보지 못하게 만든다. 자연을 대하는 철학자의 미숙함도 마찬가지다. 현상 너머에 있는 실재에 대한 상상.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현상의 다양한 생성을 보지 못하게 한다. 가면이 진짜 얼굴을 가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옷을 벗기면 그녀의 참된 속살이 드러날 것이라고 믿는 것. 그런 한에서 남성은, 철학자는 어리석다.
  지혜로운 여성은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심오한 본질? 가려진 진정성? 그런 것은 없다. 단지 그것에 대한 남성과 철학자의 상상만이 있을 뿐이다. 표면은 아무 것도 가리고 있지 않다. 남성들이 확신하는 ‘진정한 여성’이란 겨우 한 껍질을 벗은 양파에 불과하다. 껍질을 벗긴 후 드러난 것도 껍질이다. 표면이 본질을 가리고 있는 게 아니라, 본질에 대한 믿음이 오히려 표면을 가리고 있다. 그래서 니체는 말했다. “그리스인들은 심오했기 때문에 표면적이었다.”
  어쩌면 서양철학은 시네 프라도 극장의 남자가 보여준 정신 나간 짓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플라톤이 말한 동굴 속 철학자는 프라도 극장의 남자와 다르지 않다. 동굴 벽면에 비친 그림자, 그 영상을 거짓이라고 생각한 철학자는 바깥 세계에 그것의 원본이 있다고 말했다.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자 그는 칼로 자기 눈을 찔러버렸다. 프라도 극장의 남자와 차이가 있다면, 단지 어디를 찔렀느냐 뿐이다. 스크린을 찌르거나 자기 눈을 찌르거나. 그들은 모두 표면의 놀이를 즐기지 못한 것이다. 그들은 틀림없이 얼굴에 화장하는 법도 모를 것이다.

<사과나무>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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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제(15)님의 댓글

최용제(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