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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일기

김종렬(09) 작성일 07-01-04 11:07 8,378회 2건

본문

12월 30일 금요일, 송연회 겸 학고풍수회 번개가 있는 날이다.
그렇지만 동서와 처남들 가족이 집으로 들이닥친다고 하니 그저 아쉬움 뿐.
날이 어둑하자, 이집 저집 식구들이 밀물처럼 몰려든다. 제각기 술과 안주를 챙겨 들고...
꼬맹이들까지 스무 명쯤 된다. 오랜만에 집안이 제법 사람 사는 것 같다.
나는 양가 통틀어 어른 빼곤 윗사람이 없다.
장인 장인까지 오시고 보니 서열 3위다. 조카놈들은 각기 어울려 신바람이 나고,
신속하게 술상이 차려진다. 양주, 소주, 맥주, 민속주에 와인까지...
한참 후 어느 정도 술이 오르자, 동서가 슬그머니 테이블에 자리를 펴며 카드를 꺼낸다.
한판 붙자는 의미다. 판에는 나는 항상 본전 아니면 손해다. 잃어도 윗사람 체면에 갱편 받을 수도 없고, 따면 또 딴만큼 나누어 주어야하기 때문이다.
초반부터 패가 영 엉망이다. 술도 거의 바닥이 나고 결국 새벽 5시가 되어서야 마무리 된다.
결과는 뻔하다. 졌다. 아니 지는 게 편하다. 그래야 놈들이 우리집에 편하게 자주 오니까.

12월 31일 토요일
눈을 떠니 점심 때다. 뒤늦게 사무실로 나가 대충 마무리하고 일찍 귀가 했다. 원고 마감이 일주일 밖에 없어 집에서 끙끙대기로 했다. 초고는 아주 전에 써두었지만 퇴고에 애를 먹고 있는 중이었다. 차일피일하다 좇긴 것이다. 마음만 급하니 제대로 될리 없다. 글쓰는 이에게서는 원고 약속은 자존심이다. 글쟁이에겐 무엇보다 작품이 우선이다. 아무리 인간성 좋고 경제가 넉넉해도 작품이 따라오지 못하면 그저 문학건달로 치부하고 만다. 글세계는 냉혹하다.   

정해년 새해
새벽 5시, 일찌감치 눈을 떴다.
이미 날씨가 흐려진다는 건 일기예보를 통해 알 수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잠에 한참 빠져있는 집사람을 흔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일어날 기미가 없다.
'해야 못 보면 어떠냐. 새해 새벽 공기라도 함 쐬고 오자.'
그러나 그녀는 날씨 탓만 할 뿐,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러는 사이 새해 새벽은 서서이 부옇게 밝아오고, 이래 저래 생각에 뒤채인다.
늦은 아침, 아내가 김치밥국 해 먹자고 한다. 아이들도 대찬성이다. 역시 제맛이다.
식탁 대신, 거실 테이블에서 티비 보면서 편안히 먹기로 했다. 식사 후 대청소를 하고,
나는 서둘러 마트로 가 귤 세 박스를 샀다. 해도 바뀌었으니 마을 어른 몇 분을 찾아 뵐 요량이었다. 마지막으로 평소 존경하는 어른을 찾아뵈었는데, 새로 지은 황토방에서 차를 나누는데 방이 어찌나 뜨거운지 엉덩이를 몇 번이나 들썩여야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구둘막 온기였다.
이런 저런 얘기와 덕담이 오가고, 먼저 어른이 마을 주막에 가서 술이나 한잔 하자고 한다.
주막에 들어서니 낯 익은 어른들의 모습이 이미 자리를 틀고 있다. 안주래야 김치에 비지찌개, 씨락국이 전부다. 분위기가 그래선지 술 맛이 기가 막힌다. 동행한 분이 전 우리 고을의 자치위원장을 지낸 덕망 높은 유지인지라 다들 그 자리에서 술 몇 병을 내어 놓는다. 이어 누가 시내에서 오는 길이라며 생태 몇 마리와 촌두부 두 모를 들고 들어온다. 주인 아주머니의 익숙한 손에 의해 금방 찌개가 되어 안주로 들어온다. 맛이 깊고 시원하기 비할 데 없다. 금방 술이 달아오른다. 새해랍시고 가벼운 인사차 갔다가 낮술만 실컷 얻어먹은 셈이다. 그것도 어른들 앞에서...

자리를 파하고 나서는데 갑자기 인근의 고향길이며 부모님 생각이 나 핸들을 돌렸다.
마을에 들어서니 여기 저기서 마당에 연기가 피어오른다. 연휴를 맞아 가족끼리 어울려 뭔가 굽고 있다는 의미다. 아니다다를까, 다들 길을 막으며 새해 술을 권한다. 우리집은 맨끝이라 흔히 이런 재미나는 경우가 잦다. 어떤 때는 결국 집에 가지도 못하고 중간에 붙잡혀 되돌아올 때가 많다. 결국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며 마을 이바구, 옛 이바구 나누며 술잔 주고 받다보니 어느새 땅거미가 몰려온다. 역시 같은 고기도 시골 마당 평상에 걸터 앉아 풍로 숯불에 구워먹으면 맛이 다르다. 행님 먼저, 아우 먼저...거기에 맛이 간다. 그래서 고향은 영원한 마음의 안식처이며, 영혼의 안식처라고 했던가. 이미 운전하기엔 틀렸다.

집사람 차로 고향길을 빠져나오는데 자꾸 뒤가 돌아다보인다.
가을이 아님에도 고향산천이 불그레 취해 보인다.
나이가 들수록 고향에 가면 자꾸 겸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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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우(09)님의 댓글

이근우(09)

김성률(09)님의 댓글

김성률(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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