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자의 블로그에서...
본문
(중앙일보 이찬호 기자의 블로그에서 옮겼습니다.)
어린이날, 김도현 소령 1주기를 생각하며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5일 저녁 뉴스에는 어린이날을 맞아 에버랜드와 각종 놀이시설, 학교 운동장에서 즐거운 하루를 보내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스케치성으로 보도됐습니다. 그 가운데 경기 성남공항에서 열린 행사 가운데 블랙이글의 멋진 에어쇼를 감상하는 어린이들 모습도 보였습니다.블랙이글의 A-37B 전투기를 보자 지난해 에어쇼를 하던중 사고로 숨진 김도현 소령(당시 대위)이 생각났습니다. 5일은 김 소령이 사고로 숨진지 꼭 1년된 날이었습니다.
지난해 어린이날 대한민국 공군에서 촉망받던 조정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김 소령은 경기도 수원비행장에서 에어쇼를 하던 중 교차 비행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습니다. 김 소령이 조정한 A-37B 전투기는 교차 비행 후 정상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할주로와 보조활주로 사이 잔디밭에 추락했습니다. 관람석에 있던 어린이 등 1300여명이 이 광경을 지켜봤습니다. 비행기가 추락한 곳은 관람석에서 불과 1.8㎞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자칫 큰 희생자를 낼 뻔 한 사고 였습니다.
이 사고와 관련, 당시 공군 관계자는 “김 소령이 관람객의 피해를 막기 위해 탈출하지 않아 대형 참사를 막았다”며 “김 소령은 블랙이글의 영웅” 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소령의 살신성인(殺身成仁)은 사고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났습니다. 기체 잔해를 확인한 결과 김 소령의 왼손은 스로틀을, 오른손은 조종간 스틱을 잡고 있는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관람객의 안전을 위해 끝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김 소령의 이같은 희생정신을 기려 보국훈장 삼일장을 추서했습니다. 그가 몸 담았던 부대 체육관에 마련된 빈소에는 김성일 공군참모총장을 비롯한 군 관계자와 정ㆍ관계 인사 등 수많은 사람들이 조문해 ‘영웅’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부대장으로 치러진 장례식에서 김 소령의 두 아들 건우(4)와 태현(2)은 마지막 가는 아버지에게 ‘필승’을 외치며 거수경례를 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김 소령의 주변 사람들이 궁금했습니다. 지난해 사흘동안 빈소에서 취재를 하면서 김 소령의 본가, 처가 식구는 물론 블랙이글팀 동료, 공사 동기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 軍과 사회는 ‘영웅’을 어떻게 관리하는지도 궁금했습니다.
해당 군부대부터 전화했습니다.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부대에서는 김 소령을 추모하는 어떤 행사도 준비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부대 관계자는 추모행사를 하지 않는 이유로 두가지를 얘기했습니다. 순직한 조정사가 여러 명인데 (추모행사를)김 소령만 할 경우 형평성의 문제가 있으며, 가슴 아픈 사고를 다시 상기하고 싶지 않는 것이 그 주된 이유였습니다. 그러면서 공군본부와는 상의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공군본부 관계자도 비슷한 얘기를 했습니다. 추모행사를 하라는 규정은 없다며 김 소령의 경우 국민적 관심을 끌기는 했지만 다른 순직 조종사도 가슴 아픈 사연이 아닌 것이 없다며 “5일 성남 비행장에서 열린 에어쇼 직전 김 소령에 대한 애도의 표시가 있을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공군본부와 해당 부대가 김 소령에 대한 추모행사를 하지 않으면서 내세운 이유는 다소 옹색해보였습니다. 물론 순직한 다른 조종사의 죽음이 김 소령의 죽음보다 가볍다는 얘기는 절대 아닙니다. 모두가 국가 안위와 공군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분들입니다. 그럼에도 김 소령은 육군의 강재구 소령 등에 못지않게 우리 軍의 명예를 높인 영웅으로 기억할만한 인물입니다. 사고를 다시 생각하고 싶지않아서, 순직한 조정사 모두 추모할 수 없어서 등의 이유로는 추모행사를 하지않은 이유로 충분치 않은 듯 합니다.
일부 군 관계자는 김 소령에 대한 추모행사를 하지 않은 것은 골프 파동으로 불명예스럽게 물러난 공군참모총장 문제, 년초부터 문제된 잇따른 전투기 사고, 해당 부대장 교체(5월3일)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었습니다.
공군본부와 해당 부대가 이렇듯 추모행사를 하지않은 것은 물론 잠잠하니(군부대는 김 소령의 본가에도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함) 동기들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동기 가운데 김 소령과 친분이 두터웠던 몇 명이 5일 유가족과 함께 현충원을 찾았을 뿐입니다. 이날 현충원에는 김 소령의 처가 식구와 부인, 두 아들, 울산에 계신 어머니와 남동생이 참석했다고 전해들었습니다. (김 소령의 울산 본가에서는 음력으로 김 소령의 제사를 지내기로 했습니다. 그날은 5월23일입니다)
블랙이글팀(정비사와 동호회 포함) 30여명은 지난달 28일 오전 현충원을 찾아 헌화하고 술 한잔 부었답니다. 이 자리에서 동기인 박양주 소령이 추도문을 낭독했다고 합니다.(블랙이글은 5일 성남비행장에서 항공우주소년단이 주관하는 행사에서 에어쇼를 하느라 앞당겨 다녀왔다고...앞으로도 블랙이글팀은 어린이날마다 에어쇼를 할 수 밖에 없어 다른 날 현충원을 찾을 듯)
軍과는 달리 김 소령의 모교인 울산 학성고동문회는 나름대로 추모행사를 했습니다. 이들은 4일 오후 울산대공원 현충탑에서 500여 명이 참석해 김 소령을 추모했습니다. 울산시장이 참석했고, 헌시도 지어 낭독했으며, 최승희 후계자로 주목받고 있는 무용가 백향주가 진혼무를 춰 김 소령의 넋을 달랬습니다. 추모행사에 김 소령의 아버지도 참석했습니다.
사고 당시에는 ‘블랙이글의 영웅’이라며 김 소령에게 최대의 예우를 했던 국가와 軍. 1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국가와 군이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더 이상 ‘영웅’ 이 탄생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기우일까요?
(김 소령의 부인 배태안씨는 두 아들과 함께 부천의 친정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강남의 업체에 취직해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 두 아들도 건강하게 자라고 있으며 특히 큰 아들 건우는 말과 행동이 김 소령을 빼다 박을 정도로 닮았다고...지난 4월에는 김 소령과 절친했던 친구의 초청으로 대전에서 2박3일 동안 놀이공원도 가고 고기도 구워먹는 등 지내다 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외부로부터의 연락은 일체 사양하고 있습니다. 김 소령의 친구들도 철저하게 이를 차단하고 있구요. 배씨는 국민의 관심은 고맙지만 자신은 물론 아이들도 더 이상 노출되고 싶지않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