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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 가는길-정일근

김잠출(07) 작성일 07-06-04 08:27 8,414회 0건

본문

예전에 발표된 정일근 시인의 글-반구대 가는 길을 퍼왔습니다.
링크를 하시면 연변에서 조선족 처녀가 내게 가르쳐 준 노래가 있습니다. 즐감하시고 사진도 함 보시면 나의 가이드 현장이 찍혀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니 10년 후 직업해도 되겠제?
.
내가 좋아하는 그 길을 찾아가는데, 내 발에 익숙했던 길 하나가 사라지고 없다. 길은 어디로 간 것일까. 익숙한 풍경 속에 놓여진 낯선 지도 앞에서 어리둥절하고 만다. 지난 여름 울산에는 지긋지긋할 정도로 비가 많았다. 물길 가까이 있었던 그 길은 범람하는 물에 잠겨 지워졌을 것이다. 아니다. 내 생각이 틀렸을 것이다. 길은 다시 제 몸 속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길이란 사람이 만든 상처일 수도 있다.

물에 잠겼던 상처는 생딱지처럼 드러나 있다. 다시 길을 만들려는 발길을 거부하는 거대한 진흙땅이다. 진흙의 속성이 여간 드라마틱하지 않다. 물이 빠지고 몸을 드러내면서 무수히 많은 거북등 문양을 만들어 놓았다. 흙과 물과 시간이 만드는 ‘걸작’이 설치미술로 전시돼 있는 셈이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그 위에 새들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다. 진흙이 부드러운 몸이었을 때, 그때 찍힌 새들의 발자국이 도망가지도 못하고 갇혀버려 함께 굳어가고 있다. 그냥 그대로 수만년의 세월이 흘러 진흙땅이 바위처럼 딱딱해진다면, 그 시간대에 사는 문명은 바위에 찍힌 거북등과 새 발자국의 그림 앞에서 오래 고민할 것이다. 암각화에 새겨진 선사시대의 패스워드를 모르는 지금의 문명처럼.


아차! 서두가 길었다. 내가 지금 찾아가는 길은 울산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국보 285호)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선사인들이 돌에다 새겨놓은 커다란 바위그림 한장을 만나러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산 234의 1번지로 가는 길이다.


암각화란 바위그림(Rock Art)이다. 그 선사인들께서는 힘이 좋았던지 바위에 척척 그림을 새겨 놓았다. 문자도 종이도 가지지 못했기에 그림들은 그림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이 분명하다. 왜 바위에 그림을 새겼는지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다. 하늘(신)과 소통을 원하는 종교적인 집단의식이 있었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반구대 암각화에는 유난히 많은 그림들이 새겨져 있다. 높이 3m, 길이 30m의 돌병풍에 고래·물개·바다거북·사슴·호랑이·멧돼지·개·소·토끼·족제비 등과 자신들의 모습, 그리고 배·노·그물·작살·방패·울타리 같은 200점이 넘는 그림을 새겨 놓았다.


견해는 견해일 뿐이다. 해답이 없는 바위그림 앞에서 안내판에 적혀 있는 학자들의 견해들에 동조할 이유는 없다. 나는 언제나 내 식으로 생각한다. 저건 칠판일 수도 있고, 저건 시일 수도 있다. 선사시대 한 열성적인 선생님이 칠판에 동물농장을 그려 놓고 아이들에게 신나는 자연수업을 했을 수도 있고, 선사시대 한 시인이 거대한 서사시를 적고 가슴이 벅찼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방송인 전유성씨와 이곳을 찾은 적이 있다. 늘 남다른 생각만 하는 그는 반구대 암각화가 있는 이곳은 선사시대의 화장실일 것이라는 남다른 생각을 했다. 화장실에 앉으면 낙서하는 현대인들처럼 그들도 물가로 일을 보러 왔다가 ‘돌낙서’를 남겼다는 것이다. 즐거운 폭소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암각화 앞에서 상상력을 제한받는 일은 불행한 일이다. 무릇 암각화 앞에서 해석만은 자신의 몫이어야 한다. 그래야 좀더 친근하게 선사인들과 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백과사전이나 인터넷을 통해 찾은 자료를 신봉하는 일은 더욱 불행한 일이다.

자료와 견해에서 자유로워지면 반구대 암각화의 그림들은 참 재미있다. 고추를 빳빳하게 세우고 서있는 선사인도 있고, 새끼고래를 업고 있는 어미고래도 있다. 선사인의 얼굴도 있다. 삼각형 얼굴에 코는 두툼하고 면도를 말끔히 한 단정한 얼굴이다. 그래서 얼굴이 아니라 가면이라 주장하는 견해도 있지만 나에게는 분명 선사인의 얼굴이다. 말하자면 이 땅에서 가장 처음 그려졌던 초상화가 아닌가. 이 얼마나 시공을 초월한 만남인가.


선사시대를 무지한 문명으로 추측하는 사람들이 많다. 고백하자면 나도 역사 이전을 깜깜한 비문명의 시대로 상상했었다. ‘아니다. 그건 분명 아니다’라고 암각화가 가르쳐준다. 반구대 암각화를 새긴 집단도 분명히 우수한 문명과 예술의 손을 가졌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저렇게 생생한 노래들을 새겨서 남길 수 있을 것인가.


반구대 암각화 앞에서 나는 엄숙해진다. 문자를 기준으로 선사와 역사시대를 나누는 것은 선사인들에 대한 실례다. 문자를 가지면서 역사는 ‘이긴 자의 기록’이 되었다. 그리고 너무 많은 과거가 알지 못한 채 지워져버렸다. 문자를 가지지 않았지만 바위에 새긴 화려하고 찬란했을 한반도의 노래여. 진정으로 돌아가고 싶은 우리들의 ‘오래된 미래’의 문이 저기 있으니, 나는 힘차게 외친다.

열려라 문! 열려라 문!



정일근 /시인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 울산 ‘언양 IC’로 빠져나가야 한다. 언양읍에서 35번 국도를 따라 경주 방향으로 9㎞쯤 올라가면 오른편에 안내판이 나온다. 도로가 끝나는 곳에 위치한 부산식당 앞에서 내려 도보로 1㎞쯤 걸어야 반구대를 만난다. 요즘 암각화는 ‘수장’되어 볼 수가 없다. 대신 입구에 사진안내판이 서 있다. 관리인 김태관씨(011-9557-6592)의 재담이 여간 재미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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