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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좀 철이...

김종렬(09) 작성일 07-07-02 17:41 9,599회 0건

본문

어제는 모처럼 온종일 비가 내렸다.
하여 울산에서 부산 광안리까지 해안도로를 따라 하루종일 쏘다니다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여기 저기 폰을 때렸다. 술 생각, 특히 동동주 생각이 가득 했기 때문이다. 친구 하나는 야간근무 준비 중이라 하고, 집안 형은 문상 중이라 하고, 또 몇몇은 통화가 안 된다. 휴일 저녁에 술전화 넣기가 쉬운 건 아니다.
집 근처에 다다르다 장날임을 떠올리고 차주 세웠다. 풋마늘 생각이 났다. 막걸리 몇 통 사서 집에서 안주로 찍어 먹고 싶었다. 날씨 탓인지 시장골목이 좀 엉성하다. 이리저리 기웃거려봐도 풋마늘은 보이지 않는다. 때가 늦은 탓임을 뒤늦게 알고선 대신 살이 두꺼운 통통한 고추를 한 봉지 사들고 막걸리 두 통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 술을 마시고 싶다는 것은 곧 배가 출출한데서 오는 오랜 습관적 반응이다.
집에 들어서니 아내가, 비 오는 날 아침부터 나간 사람이 어째 이 시간까지 맨정신으로 들어 오노?, 하다가 손에 들린 막걸리 담긴 비닐봉지를 보고는, 그럼 그렇지, 한다. 이어 쌈장과 함께 투박한 잔 하나가 나온다. 유리잔을 내놓지 않는 걸로 보아 뭔가 좀 아는 듯하다. 적어도 얼마 전의 곰탕과 김장은 큰 걱정하지 않아도 될 성싶다.
막걸리 한 사발 쭈욱 들이킨 후 찍어먹는 고추맛이 가히 일품이다. 육질이 아삭하게 씹히는 맛이 그만이다. 고추 한 개가 금방 꼭지만 남긴다. 이어 한 개를 집어 반으로 뚝 분질러 아내에게 먹어보라며 건네자 아내의 눈이 동그래진다. 참 오래 살다보니 당신이 내게 먹어보라고 권할 때도 있네. 그것도 말로가 아닌 직접 건네며...,한다. 자칫 감동해 하는 것 같다. 다른 집에서는 흔히 있는 일인지 모르지만 우리 집은 좀처럼 볼 수 없는 대목이다. 우선 나부터 먹어봐야 되고, 내 배가 부르고 나야 나올법한 아주 드문 일이다. 밖에서는 정반대지만. 어쨌거나 무심코 건넨 풋고추 하나에 그렇게 감동할 줄이야. 결국 행복은 멀리, 특별한 것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가까이의 아주 작은 것에 있다는 것을.....아직은 더 살아봐야겠다.
오늘도 비가 좀 왔으면 좋겠다. 아쉬운 대로 근처 마트를 뒤져 혹시 있지도 모를 풋마늘 사서 낮 막걸리 한 잔 해야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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