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나라가 부러운 딱 두가지 <옮긴 글>
박창홍(15)
작성일
08-06-15 14:01 11,07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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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미국이란 나라가 부러운 딱 두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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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문화 환경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만만치 않은 심리적 압박을 수반하지만, 이 적응 과정은 의미 있는 배움의 기회이기도 하다. 그동안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자국의 문화와 제도를 낯선 눈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새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익숙한 과거 환경과 끊임없이 비교하는 가운데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국의 삶은 도리어 모국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생각하고 깨닫는 기회가 된다.
흔히 처음에는 차이점에 주목하게 된다. 이처럼 차이가 크게 부각되는 초기에는 자국이나 타국 중 어느 한 곳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반대 나라를 깎아 내리는 태도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타국에서의 삶도 이내 '여행'에서 '삶'으로 바뀌고, 좀 더 시간이 흐르면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즈음이면 자국과 타국의 장단점이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어 눈에 들어오게 된다.
부러운 공공도서관, 더 부러운 장애인 배려
어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미국은 나름의 장단점을 지니고 있다. 언젠가 미국 친구가 '미국의 어떤 면이 가장 마음에 드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본래 나쁜 점은 구체적으로 보이지만, 좋은 점은 추상적이고 모호하게 나타나는 법이다. 얼른 답을 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눈을 굴리자, 친구가 도움을 줄 요량으로 한 마디 보탠다.
"뭐든 가져갈 수 있다면, 한국으로 뭘 가져가고 싶어?" 넓은 땅? 다양한 자연 환경?'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끝에 두 가지 답을 내놓았다. 공공도서관(public library)과 장애인에 대한 배려.
유럽에 비해 미국은 '복지'랄 만한 것이 거의 없는 나라다. 문자 그대로 살인적인 의료비와 보험료, 졸업이 곧 거액의 빚쟁이가 되는 과정인 대학의 터무니없이 비싼 등록금(미국 대학생들은 평균 2000만원 이상을 빚지고 사회에 나간다), 돈 없는 노인을 비참하게 하는 빈곤한 노후 복지가 말해주듯.
하지만 이 복지의 불모지에서도 공공도서관과 장애인 정책만큼은 빛을 발한다.
미국 공공도서관은 지역 주민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각지 구석구석에 설치되어 있다. 인구 수천명의 작은 마을조차 공공도서관이 없는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이 도서관들은 쾌적한 시설에 다양한 도서·음반·영화 등을 갖추고 있다. 이 곳은 주민들을 위한 독서클럽, 전시회, 저자와의 대화, 영화상영 등 문화 행사의 공간으로도 사용된다.
미국 공공도서관의 가장 뛰어난 면은 주민들의 편의를 최대한 배려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필요한 자료를 온라인으로 예약할 수 있고, 신청한 자료가 도서관에 준비되면 신청자에게 이메일이나 전화로 알려 준다. 여러 지역의 도서관들이 데이터베이스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지역의 자료도 신청할 수 있다. 그러면 신청자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배달까지 해준다.
미국의 공공도서관은 한국어 책들을 포함해 놀랄 만큼 방대한 자료를 갖추고 있다. 도서관은 잘 훈련받은 사서들을 고용해 이용자들을 돕는다. 공공도서관의 자료 구비와 시스템 구축, 그리고 인적 관리는 정부의 충분한 재정 지원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처럼 훌륭한 도서관보다 더 부러운 것은 미국의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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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도시에서 한 시간쯤 차를 몰면 인적이 드문 교외가 펼쳐진다.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곳이니, 도로도 넓지 않고 지나는 차도 많지 않다. 언젠가 이 곳을 지날 때 도로 한쪽에 세워진 노란색 교통표지판을 볼 수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형식으로 되어 있었으나 시에서 설치한 공식 표지판임은 분명했다. 읽어보니 이렇게 쓰여 있었다.
"근처에 청각장애인이 살고 있으니 주의해서 운전하시기 바랍니다." 표지판 위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언덕 위에 세워진 작은 집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 사는 가족 가운데 한 명일 것이다. 혹시 당사자가 도로 근처에 나왔다가 경적 소리를 듣지 못해 사고를 당할 우려가 있으니, 운전자가 미리 주의해 달라는 당부다.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수많은 장애인들이었다. 거리·공원·식당·극장·공연장, 버스 안 등 어디서든 휠체어를 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장애인이 없는 사회는 없다. 한국에서 장애인들을 보기 어려운 것은 수가 적어서가 아니다. 건물과 거리, 교통수단 곳곳에 존재하는 장애물과 '정상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의 왜곡된 시선이 이들의 외출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용 화장실'을 보기 어려운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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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가 쉽게 들어갈 수 있게 넓게 설계된 화장실 구조는 모든 사용자에게 쾌적함과 편안함을 준다. '범용 디자인(universal design)' 혹은 '장벽 제거 디자인(barrier-free design)'이라 불리는 이 설계 방식은 어린이와 노약자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환영받고 있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미국 사회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버스가 정차하면 차체가 승차장 높이로 낮아지거나 출구에서 진입용 경사로가 나와 휠체어가 쉽게 진입할 수 있다.
버스 안에는 휠체어를 위한 공간이 별도로 확보되어 있다. 휠체어 사용이 어려운 장애나 대형버스의 접근이 쉽지 않은 지역에는 이들의 필요에 맞춘 전용버스가 운영된다.
초중고등학교에 가면 서너 명의 교사들이 함께 수업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담당 교사 뿐 아니라, 장애 학생을 1대1로 돕는 전문교사, 그리고 영어 이해에 어려움을 겪는 외국 학생을 위해 스페인어, 중국어, 한국어 등의 담당 교사들이 공동 수업을 하는 풍경이다. 장애인들은 자신들의 필요에 맞춘 교육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고, 학교와 정부는 이를 무상으로 제공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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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애인 보호법은 '차별을 금한다'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내용이 아니라, "상점과 식당 등 대중 시설의 출입문은 최소한 32인치 이상 열려야 한다"는 아주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만일 이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장애인들은 업소를 고소할 수 있으며, 위반 사실이 입증될 경우는 보상은 물론, 원고의 소송비용까지 물어야 한다.
소송이 끝난 후에도 시설을 고치지 않으면 몇 번이고 고소를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업소는 이를 피하기 위해 장애인 접근권을 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대기업의 경우, 장애인 보호법 위반으로 고소를 당하는 것 자체가 심각한 기업 이미지 손상을 의미한다. 그 때문에 기업들은 거의 강박에 가까우리만큼 시설에 신경을 쓴다.
성희롱 처벌, 장애인 채용 의무 완화 요구하는 한국 재계
2008년 4월 초, 한국의 전국경제연합회와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 5단체는 정부에 기이한 요청을 했다. '기업 활동에 방해가 된다'며 직장 내 성희롱 처벌 완화와 장애인 채용 의무 환화 등을 요구한 것이다. 입만 열면 정부에 '미국식'을 요구하는 기업들이 이런 부분에서는 '주체적으로' 외길을 간다. 정상적인 정부라면 '검토하겠다'가 아니라 '부끄러운 줄 알라'는 답변이 나왔어야 한다.
흥미롭게도 1990년에 장애인법을 통과시킨 대통령은 공화당의 '아버지 부시'였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운 한국의 보수 정부와 유사한 '탈규제'를 표방한 정부가 이 법을 추진한 것이다. 그는 법안에 서명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기업들 가운데는) 장애인 보호법이 너무 모호하다거나 지나친 비용을 요구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끝없는 소송을 낳게 될 것을 우려하는 이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자신 있게 말씀 드리건대, 저와 의회는 아주 신중하게 이 법안을 작성했습니다…(중략)…우리 다 같이 수치스러웠던 차별의 벽을 허물어 버립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공화당에 불순한 '반기업 세력'이 잠입해 대통령을 의식화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다. 간단하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공감대가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장애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정신은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아동용 교육방송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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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공영방송 피비에스(PBS)는 어린이용 전문 채널(PBS KIDS)을 운영하고 있다. 이 채널은 한국에서도 잘 알려져 있는 '세서미 스트리트'를 비롯해 다양한 어린이용 프로그램을 전국에 방송한다. 상업 광고 없이 정부 보조 및 찬조금으로 운영되는 이 방송은 양질의 교육 프로그램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중에서 전국의 부모들과 교육 전문가, 그리고 무엇보다 어린이들을 가장 열광시키는 프로그램이 있다. < 용 이야기(Dragon Tales) > 라는 애니메이션이다. 이 만화는 에미상과 부모 최고 추천상 등 화려한 수상경력을 자랑하며, 아동용 프로그램 중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바라건대, 진심으로 바라건대, 저 먼 공룡의 나라로 우리를 데려가 다오." 주인공 소년소녀가 일상의 작은 문제에 부닥칠 때면, 이들은 용의 비늘을 잡고 이렇게 주문을 왼다. 그러면 놀이방 벽지에 그려져 있는 갖가지 용들이 살아나 그들을 에워싸고, 주인공들은 순식간에 신비로운 용의 세계로 빠져 들어간다. 여기까지 보면 한국에서도 흔히 접하는 공상 만화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등장 인물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이 만화영화의 특별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 만화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는 공통점을 찾기 어려울 만큼 외모와 성격이 다르다.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나름의 약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차이와 약점은 서로 존경하고 감사해야 할 미덕으로 그려진다. 예를 들어 주인공 소녀 에미는 항상 자신감에 차 있으나, 이 열정은 항상 문제의 시작이 된다. 동생 맥스는 키가 작아 고민하지만, 결국 그의 작은 체격은 문제를 해결하는 훌륭한 장점이 된다.
분홍색 소녀 용인 '캐시'는 지나치게 수줍어하고 매사에 자신감이 없지만, 문제를 파악하는 차분한 두뇌를 가지고 있다. 파란색 용 '오드'는 뚱뚱한 체격과 달리 항상 겁이 많다. 하지만 가장 힘이 세고 움직임이 빨라서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데 꼭 필요한 존재다. '잭과 휘지'는 머리는 두 개지만 몸은 하나인 샴쌍동이 용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탁월한 재능으로 친구들을 행복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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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교육방송'하면, 글이나 수를 가르치는 기능적인 프로그램을 떠올린다. 하지만 나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그보다 더 소중한 교육이 아닐 수 없다. 비록 '효율성'이 진리로 군림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장애인 정책은 한 사회가 인간을 어떻게 대접하는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당신은 어느 나라에 살고 싶은가? 어제까지 거리를 즐겁게 활보하던 당신을 오늘 몸이 불편해진다고 어둠과 냉대 속에 몰아넣는 '효율적인' 사회에 살고 싶은가. 아니면 당신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든 변함없이 배려하고 보살피는 사회에 살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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