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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나폴리, 딴 세상 콘텐츠
다문화도시로 변신해야 할때
3면이 바다인 반도라는 지형적 특성과 끈끈한 가족 사랑, 그리고 기질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이태리 사람들의 닮은꼴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먹거리에서도, 엔초비라 불리는 젖갈 속의 통멸치를 먹고 있다는 것이 구수하고 감칠맛 나는 정자 멸치젖갈을 먹고 자란 울산 사람으로서 엄청난 동질감을 느낀다. 이런 터에 작년 여름 나폴리에서의 경험은 오히려 우리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계 3대 미항의 하나인 나폴리 산타루시아 항구에 어둠이 내려 앉으면, 화려한 불빛의 포장마차가 영업을 시작하는데, 그 메뉴가 놀랍게도 천엽, 족발, 양, 곱창 등 이었다. 소금을 치고, 레몬즙을 듬뿍 뿌려 내놓는 이 안주는 3유로나 5유로 등 돈을 내미는 대로 접시를 만들어 주는데, 그 맛 또한 담백한 것이 일품이었다.
다만 소주가 없어서 맥주와 함께 먹어야 한다는 것이 2% 보다 훨씬 더 많이 부족한 허전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 다음날, 나폴리에서 뱃길로 한 시간 거리의 살레르노라는 한적한 바닷가 야외 테이블에서 나와 같은 목적으로 이태리 거래처를 찾아온 폴란드 사람들과 함께 싱싱한 생멸치 튀김과 삶은 홍합 그리고 조개볶음을 먹으면서는 질투심으로 변했다.
이런 식재료들은 우리와 익숙한 것들인데, 이태리 사람들은 글로벌한 메뉴로 변신시켜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거부감 없이 다가가 있었다는 점이 우리와 많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결국 방아잎 향이 가득한 입가심 술 '피노치에또'에 이르러서는 얼마나 얄밉던지…. 커피 한 톨 생산되지 않는 나라에서 커피 관련 기기와 문화로 세계 시장을 석권한 이태리 사람들의 저력을 이런 먹거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세계 3대 미항이라는 나폴리를 자연 경관으로만 비교하면 서생에서 정자로 이어지는 울산해변이 오히려 더 멋지다고 감히 말 할 수 있지만 소프트웨어 즉 컨텐츠는 그렇게 달랐다. 나폴리에서 비교해 봤던 울산 바닷가의 먹거리 추억은 해안가에 즐비한 각종 레스토랑이나 러브모텔 등 어색한 색상의 울긋불긋한 건물과 획일적으로 이루어지는 횟집에서의 서비스 등이 먼저 머리에 떠 오른다.
해안가 풍경 치고는 민망할 정도의 이들 건물들을 지나 회시장이나 횟집촌으로 가면 대동소이한 어종들을 비슷한 가격에 경쟁하듯 호객하고, 이리저리 기웃 거리다 한 집에서 생선을 고르면, 시멘트 바닥에 '떼기장 치기'로 얼을 뺀 다음 쉐이빙 기계로 껍질을 벗기고, 기계로 회를 썰며, 심지어 탈수기로 회의 물기를 빼기도 한다.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일사불란'하게 이뤄지는 서비스에다 고객의 취향과 상관없이 종이 컵의 공짜 '커피믹스'로 마무리 된다. 이 마무리 음료도 유행처럼 식혜로 변했다가 요즘은 하나 같이 매실차로 바뀌었다고 한다.
일본식 숙성회인 선어집이나 깔끔한 활어 튀김에 시원한 생맥주를 마실수 있는 차분한 집들은 울산 해변에서는 장사가 안되는 걸까? 비오는 날, 바다를 보며 따끈한 어묵에 정종을 마실 수 있는 가게도 몇 집 정도 있어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횟집 마다 일회용 비닐 테이블보를 손님 앞에서 빨래 털듯 펼치며 식탁을 차리는 것도 편리함에 앞서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같다.
이태리 해변가 식당들은 손님이 바뀔 때마다 천으로 된 테이블 보를 바꿔주고 카버차지(cover charge)라는 명목으로 2000~3000원정도를 꼬박꼬박 계산서에 포함시키지만 환경문제 이상의 가치는 있어 보인다. 울산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이미 시 전체인구의 1%를 넘었다는데, 우리 끼리만 맛나게 먹고 기분내며 살기에는 울산이 너무 커져 버린 만큼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문화 도시로 변신해야 할 때이다.
세계 최대의 조선도시 답게 다양한 유람선들이 관광객을 가득 태우고 아름다운 울산 해변을 분주히 오가는 풍경을 그려 본다. 횟집마다 차별화된 다양한 메뉴와 늘어난 매상에 신바람이 나고, 각 러브모텔은 1년 전부터 예약을 해야 전망좋은 방을 겨우 구할 수 있는 오래 머물고 싶고 다시찾고 싶은, 작고 이쁜 바닷가 호텔들로 바뀐 모습도 상상해 본다.
박정환SLC 대표이사(학성고 3회 졸업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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