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탄 난로
이정걸(02)
작성일
08-09-10 09:25 9,45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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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로가 데워준 내 도시락… 누룽지는 덤
양철통 든 당번 아이들의 고사리 손이 서럽게 시리다. 창고 앞에는 이미 줄이 길다. 소사아저씨가 삽으로 조개탄을 퍼서 양철통 한가득 담아준다. 다른 당번 아이의 양철통에는 불쏘시개 나무가 담긴다. 종종걸음을 쳐보지만 교실 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선생님은 교실 한가운데 있는 무쇠난로에 신문지를 넣고 나무를 적당히 배치한 뒤 신문지에 불을 붙인다.
나무가 활활 타오르면 조개탄을 넣고 뚜껑을 닫는다. 물을 가득 담은 커다란 양은 주전자를 올려놓으면 끝. 주전자 주둥이에서 김이 힘차게 솟는다. 겨울 교실의 가습기다.
조개탄 난로의 난방 효과는 지역 간 불평등 그 자체다. 난로 가까운 학생들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지만 난로에서 먼 학생들의 손은 곱고 발은 시리다. 불평등 완화를 위한 학생들의 자발적 자리바꿈도 가끔 이루어진다.
조개탄 난로 최대의 로망(?)은 양은 도시락통을 난로 위에 올려 밥을 데워 먹는 일이다. 난로 바로 위 도시락은 밑이 누룽지 비슷하게 익거나 밥이 탈 때도 있지만, 다른 도시락통 여러 개 위에 놓이면 찬밥 신세다. 겹겹이 쌓인 도시락이 와르르 무너지는 대형사고는 '공든 탑 무너지랴'는 교훈을 익히는 체험 교육이었을까?
▲ 일러스트레이션=박광수
시골 학교에서는 난방 연료용 솔방울 따기가 방과 후 학생들의 중요한 일과였다.
당시를 회상하는 40대 중반 P씨(대학교수)의 말이다. "친구들과 마을 뒷산에 올라가 솔방울을 따기도 하고 주워 담기도 했습니다. 고학년은 두 포대, 저학년은 한 포대를 채워야 했어요. 생각하면 참 힘들기도 했지만 친구들과 놀러 나온 기분도 들었지요. 그땐 그게 아주 당연한 일로 생각되었습니다. 한 번은 선생님과 함께 뒷산에 오른 적도 있는데, 때 아닌 노래자랑대회가 열렸어요. 춥고 어려웠던 시절이지만 마음만은 따뜻했어요."
초등학교 교사이기도 한 시인 김용택은 '김용택의 교단일기'에서 그때를 회상한다. "교실이 훈훈하다. 2년 전부터 석유난로 대신 심야전기를 이용한 충열식 난로를 놓았다. 장작을 가지고 와서 난로를 피워 도시락을 뎁혀먹고 고구마를 구워먹던 시절을 지나, 조개탄(아! 조개탄 불 피우기는 힘이 들었다)과 갈탄 시대를 지나, 석유를 땠다. 모두 교실 공기를 맵고 탁하게 하던 난로들이었다. 특히 조개탄을 땔 때 교실엔 오소리 잡으려고 오소리 굴에 연기를 피운 것처럼 연기가 가득했다."
시린 발과 곱은 손은 과거의 추억에 불과한가? 아니다. 2007년의 경우 충분한 난방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은 교실이 전국적으로 7만8000여 개로 전체의 15.9%라 한다. 조개탄 난로 난방 효과의 교실 내 지역 간 불평등은 자리바꿈으로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지만, 지역 교육 예산이나 학교별 격차에 따른 난방시설 불평등은 정부가 발 벗고 나서야 하겠다.
[조선일보-표정훈·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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