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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습니다

이정걸(02) 작성일 08-09-18 09:49 9,010회 0건

본문

열 아홉의 어린 나이에
장원 급제를 하여 스무 살에 경기도
파주군수가 된 맹사성은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무명 선사를 찾아가 물었다.

"
스님이 생각하기에 이 고을을
다스리는
 사람으로서 내가 최고로
삼아야 할 좌우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오?"

그러자 무명 선사가 대답했다.
"
그건 어렵지 않지요. 나쁜 일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많이 베푸시면 됩니다."

"
그런 건 삼척 동자도 다
아는 이치인데 먼 길을
온 내게 해 줄 말이 고작 그것뿐이오?"

맹사성은 거만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무명 선사가 녹차나 한 잔 하고 가라며 붙잡았다.
그는 못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스님은 찻물이 넘치도록
그의 찻잔에 자꾸만 차를 따르는 것이 아닌가.
"
스님,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망칩니다."

맹사성이 소리쳤다. 하지만 스님은
태연하게 계속 찻잔이
넘치도록 차를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는 잔뜩 화가 나 있는
맹사성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고,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스님의 이 한마디에
맹사성은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졌고 황급히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문에 세게 부딪히고 말았다.
그러자 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
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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