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닷컴에 소개된 퀘벡주 독립에 관한 반대와 찬성의 모습들.
최근에 캐나다의 퀘벡 주가 연방 내 하나의 국가로 인정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모두 알다시피 퀘벡 주는 영연방 국가 캐나다에서 프랑스 계 이민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지역이다.
주의 공식 언어가 프랑스어일 뿐 아니라 도시의 풍경이나 주민들의 생활이 완전히 프랑스 복사판이다.
한때 프랑스도 영국과 더불어 식민지를 개척하는데 주력해 신대륙 아메리카 진출에 노력한 적 있었다.
미국의 동남부 지역에 거점을 마련하기도 했었는데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해 밀려났고 캐나다에서는 퀘벡 주를 중심으로 프랑스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다.
퀘벡 주의 수도라고 할 수 있는 몬트리올이 과거 올림픽을 개최한 이유도 캐나다에서서 분리 독립을 하기 위한 퀘벡 주의 시도였다.
그냥 거대한 영토의 캐나다의 틀 안에서 얼마든지 공존을 모색할 수도 있을 텐데 분리주의자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가보다.
알고 보면 그게 다 영국에 대한 프랑스의 자존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의 노르망디 지역에 가 보면 영국의 켈트족들이 많이 거주한다.
중세 때 영국이 노르망디 지역을 점령하면서 자리 잡은 후예들이다.
과거에 로마의 통치 하에 있을 때부터 영국과 프랑스는 가까운 이웃이었다.
영국의 왕실에 프랑스 사람이 들어가 큰 공적을 세우기도 할 정도였다.
두 나라가 앙숙이 된 것은 100년 전쟁에서부터 유래된다.
프랑스 노르망디 출신의 윌리엄 공이 1066년 영국의 내전을 종식하고 정복자로서 위용을 과시할 때 그의 영토였던 프랑스의 노르망디 지역과 파리 교외의 노른자위 땅이 자연스럽게 영국의 영토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를 못마땅하게 여긴 프랑스는 잉글랜드에 끈질기게 저항하는 스코틀랜드를 노골적으로 후원했다.
그런데 프랑스 지배 하에서 높은 세금에 시달리던 지금의 벨기에와 네덜란드(플랑드르)의 상공인들이 영국에 붙으면서 교묘하게 영국과 프랑스를 이간질했다.
그래서 발발한 전쟁이 100년 전쟁이다.
1337년부터 1453년까지 지겹도록 전개된 전쟁에서 영국은 초기에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프랑스보다 인구도 적고 영토도 적었던 영국이 우세한 이유는 신무기인 석궁을 개발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100년 내내 우세했던 영국이었지만 잔다르크의 등장으로 똘똘 뭉친 프랑스가 마지막에는 승리를 거둔다.
그때 대륙에서 추방된 영국은 완전히 섬나라로 영토가 굳어지게 되고 프랑스 국민들과도 원수가 되는 것이다.
그 전쟁의 여파가 영국과 프랑스에 미친 영향을 가만 지켜보면 흥미롭다.
100년 전쟁에서 돌아온 영국의 군인들은 실업자로 전전하다가 약탈을 일삼는 산적이 되어 영국을 혼란에 빠트리게 된다.
사병을 많이 거느리고 있던 귀족들이 막강한 힘을 지닌 대신 전쟁에서 패한 국왕의 권한은 형편없이 줄어들었다.
그래서 왕을 우습게 알고 귀족들이 행세하기 시작한다.
당시 최고의 세도가였던 요크 집안과 랭카스터 가문이 치열하게 주도권 쟁탈전을 벌였는데 영국의 모든 귀족 가문들이 양쪽에 줄을 서는 현상이 벌어졌다.
양 가문의 문장이 백장미와 붉은 장미였으므로 역사는 그 전쟁을 장미전쟁이라 부르고 또는 30년 전쟁이라고도 한다.
30년에 걸친 귀족들의 전쟁을 통해 영국의 귀족들은 씨가 마르게 된다.
대다수 국민들은 귀족들의 전쟁에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전쟁이 끝났을 때 귀족의 숫자는 절반 이하로 줄어들어버렸다.
그런 이유로 귀족의 권한이 대폭 줄어들고 왕권이 부활하면서 영국의 국왕은 절대적인 힘을 행사하게 된다.
또한 귀족들이 유명무실해지자 시민계급에서 그 빈자리를 메우게 되는데 장사꾼이나 법률가 학자 등의 전문인들이 젠틀맨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의 요직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과정으로 영국은 자연스럽게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었다.
반면 프랑스는 계속 왕의 힘이 강해서 귀족들이 왕에게 충성을 다하는 바람에 자연스런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그렇게 억눌린 민중들이 마침내 혁명을 통해 일거에 세상을 뒤엎게 된다.
영국의 정치발전이 역사의 기복에 따라 조금씩 변화했다면 프랑스는 한방에 급진적인 변화를 일으킨 셈이다.
100년 전쟁이 없었다면 영국과 프랑스의 역사가 어떻게 변했을지 아무도 모르리라.
어쩌면 윌리엄 공 이후의 영국 왕이 프랑스를 점령해 한 나라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원수가 되었어도 독일이 유럽의 강자로 등장하자 두 나라는 연합해 힘을 모은다.
1차 대전과 2차 대전에서 두 나라는 동맹국이었다.
지금도 그 동맹은 미국이란 강자가 주도하는 형국이긴 하지만 은근하게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보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퀘벡 주 분리문제로 시작해 중세의 역사까지 두루 살펴보았다.
지금은 미국이나 러시아에 밀려났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지구의 강대국으로 그 어떤 나라도 무시하지 못한다.
치열한 역사를 통해 무수한 실험을 거쳐 국력을 길렀기 때문이다.
두 나라가 격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어떤 나라들과 동맹을 맺고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살피면 세계사의 키워드가 보인다.
그래서 외교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외교는 고사하고 내치마저 심란한 대한민국의 오늘이 심히 염려스러워 영국과 프랑스를 살짝 넘겨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