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황국신민화교육 (서문당, 사진으로 보는 독립운동 하, 1987, 1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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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4월 1일 실시한 '개정조선교육령'은 '황국신민화' 교육을 강요했고, 1941년 2월 28일 히로히토 칙령 148호에 따라 '국민학교' 등장, '황국신민'에서 '국'자와 '민'자를 따왔다. 1941년 4월 1일부터는 국민학교의 조선어 학습 전폐와 함께 일상용어마저 조선어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일본어만 사용토록했다. 사진은 국민학교 '일본어독본'을 읽고 있는 어린이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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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조선신궁 (한길사,한국사-13, 1994, 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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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산 국사당 자리에 세운 조선신궁, 1925년 10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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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창씨개명(1939.11) (서문당, 사진으로 보는 독립운동 하, 1987, 1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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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1939년 11월 10일, '조선인 씨명에 관한 건'을 공포하고 1940년 2월 11일 창씨개명을 전국적으로 강요했다. 창씨 개명으로 전 인구의 8할 이상이 일본식으로 창씨개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은 창씨개명을 계출하기 위해 경성부청 호적과에 줄을 선 광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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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노동자 강제연행 (사진기록 일제침략, 어문각, 1983, 72,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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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쪽 - 큐우슈우 야하타시에서 강제 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한국인들. 아래쪽 - 큐우슈우 도요스 탄광의 한국인 합숙소 벽에 쓰인 한글 낙서. 전쟁에 필요한 증산체제를 위하여 부족되는 노동력을 충당하려고 일제는 노동자들을 강제로 연행하였다. 강제 연행은 1939년부터 시작되었고, 형식적으로는 '모집' '관의 알선'(1942), '징용'(1944)의 세가지 형태가 있었다. 모집단계에서부터 국가적 차원의 '노무동원계획'에 의하여 통제되었다. 실제로 이러한 연행 업무를 관장했던 '노무보국회' 직원들은 이를 두고 '조선인 사냥' 이라고까지 불렀다. 전혀 인간 취급을 하지 않은 채 논과 밭에서 일하고 있던 농부들을 닥치는대로 체포하여 트럭에 태워 그대로 일본으로 연행하여 강제노역에 동원하였다. 1045년 8월 일본에는 2백 수십만명의 한국인이 살고 있었다. 강제 연행이 시작된 1939년에는 100명 정도였다. 강제 연행 기간 동안 100만명 이상이 연행된 셈이다. 연행되어 간 곳은 일본만이 아니라 최전선 비행장 건설, 남태평양, 버마전선, 사할린, 아류우샨에까지 도달했다. 한국내에서는 더 많은 징용이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수백만명의 한국인들이 징용되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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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징병 (서문당, 사진으로 보는 독립운동 하, 1987, 1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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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5월 11일 일제는 친일단체인 '국민총력조선연맹'을 동원해 '징병제 실시' 신궁봉고제라는 해괴한 행사를 하고 한국에 대한 징병제 적용을 '감사'하라면서 신사 참배와 시가행진을 강요하였다. 1937년 중국침략 이후 전쟁이 확대되고 병력이 부족해지자, 일제는 한국인을 군인으로 동원하기 시작하였다. 1938년에는 육군 지원제도, 1943년에는 해군 지원제도 등 명목상으로는 지원제였으나, 뒤에는 할당제가 시행되었다. 1943년에는 '학도병 동원'을 거쳐 1944년에는 전면적인 징병제가 실시되었다. '지원'과 '징병'을 합쳐 싸움터로 몰려진 한국인 병사는 일제의 발표로도 23만명에 이르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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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정신대 (사진기록 일제침략, 어문각, 1983, 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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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정신대'라는 미명 아래, 속아서 끌려간 여성들이 중국에 도착 직후, 검진을 받으러 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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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놋그릇 공출 (사진기록 일제침략, 어문각, 1983, 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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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전쟁 말기, 전쟁물자 조달을 위해 놋그릇은 물론 일체의 쇠붙이를 깡그리 수탈해 갔다. 공출받은 물건들을 쌓아놓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일본인들. '국어상용'의 슬로건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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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애국부인회 (서문당, 사진으로 보는 독립운동 하, 1987, 1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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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부인단체인 '애국부인회' 경성부분회 종로 6정목 분구회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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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희망의 아침(1938) (반민족문제연구소, 친일파 99인 3, 돌베개, 25.114 ; 고등학교 국사 하, 1990, 168 합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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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서는 "음악 분야에서는 안익태가 애국가를, 홍난파가 봉선화를 작곡하였는데, 당시의 음악인들은 일제에 억눌린 민족의 감정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표현하였다." 고 기술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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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친일 만화 (역사문제연구소, 인물로보는 친일파 역사, 역사비평사, 1993, 2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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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수현, 멍텅구리({신시대} 연재만화, 1941.1) 심산 노수현은 일제때는 동양화단의 베스트 10이었고, 1970년대 이후에는 베스트 6에 드는 화가. 화랑가에서 6대가에 드는 명망가. 그가 일제때는 만화를 많이 그렸다. 멍텅구리 내용은 "때는 비상시, 국력총동원하는 이때에, 신년새해 놀고 있느 건, 잘못도 이만 잘못이 아니란 말이야...에튀, 대륙 제일선에서는..., 야, 멍텅구리, 우리도 나라를 위해 신년새해 일을 하세!, 지원병은 어떨까?, 오십당년에 못될 소리..., 차라리 자동차 운전을 배워가지고 전선에 나감 어떨까? 역시 바람이 제일이야, 그럴듯한 일일세, 그러면 내일부터라도 운전수 지망 ..., 만세 ... 만세." 청년들처럼 총들고 전쟁터에 나갈 수 없으니까 이 중년 신사들은 운전을 배워 전선에 나가겠다는, 이른바 성전에 복무해야 한다는 친일적인 내용을 드러내는 만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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