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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모르고선 "한국"을 말할 수 없다

이성호(07) 작성일 09-01-29 22:06 9,103회 0건

본문

오래전 기사입니다 만 다시함 울산인으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자는 의미로 퍼다 옮깁니다..
 
특히 현대중공업 근무하는 친구들은 정말
어깨 힘 좀 주고 읽주시길..
 
 
 
<도 올 김 용 옥 기자의 '현장 속으로'>

"울산"모르고선 "한국"을 말할 수 없다

나는 지식인이다.
이 세상에서 날 보고 지식인이 아니라고 얘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지식인들에게는 공통의 지병이 있다.

소위 지식이라고 하는 관념의 아성 밖을 벗어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관념적 언어로 구성한 세계밖에 별 다른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밴댕이콧구멍 만한 자기관념의 세계를 드넓은 우주라고 착각하고 사는 것이다.
그래서 도서관에 빽빽이 들어찬 서림의 서향을 쑤시고 다니지만 그곳에서 발견하는
세계가 때로는 알타미라동굴보다 더 작은 세계일 수도 있다.

나는 선사시대 반구대 암각화에 대한 무한한 동경이 있었기에 울산에 왔다.
그런데 부끄러운 사실은 내가 조선에 사는 사람으로서 울산이라는 땅을 나의 생애에서 처
음으로 밟았다는 것이다.
 
내가 부끄럽다고 말하는 뜻은 내가 살고 있는 현대 한국의 모습을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울산이라는 도시정도는 꼭 두 눈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즉 관념의 아성을 벗어나 나의 삶의 실제 모습을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나의 현재적 삶을 구성하고 있는
이 울산이라는 산업의 장(場)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반구대암각화를 들여다보면, 암각화를 그린사람들의 실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은 농경보다는 어로와 수렵을 생계의 수단으로 삼았으며 어로의 현장은 바다 쪽인
서편에 집중해서 그렸고, 수렵의 상황은 내륙 쪽인 동편에 집중해서 그렸다.

서편의 그림은 면각(面刻)의 기법을 주로 썼고 동편의 그림은 선각(線刻)의 기법을 주로 썼다.
그러니까 시대적으로 그린 사람들이 다른 것이다.
면각의 기법 위에 선각이 덧칠해진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선각이 면각보다 후대에 성립한 것이다.
그런데 어로의 장면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엄청난 숫자의 고래그림이다.
그런데 이 고래 그림들은 매우 정교한 사실적 관찰력에 기초하고 있으며,
울산 앞바다에서 회유(回遊)하는 10여 종의 고래의 모습이 모두 나타나고 있다는데 그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고래가 물을 뿜어내는 형태도 종류에 따라 다른데 분수처럼 V자로 뿜어내는 것이 긴 수염고래며,
이것은 울산 앞바다에서 자주 목격되었던 것이다.
독특한 배 주름을 가지고 있는 흰 긴 수염고래는 몸체에 여러 개의 긴 선을 그어 표현하였고, 색깔이 확연히 구분되는 범고래의 문양은 그 모습대로 반만 쪼아서 팠다.

입 모양을 유난히 강조해서 그린 귀신고래는 실제의 모습과 흡사하다.
그리고 귀신고래는 새끼고래가 30초 이상 물속에 있지 못하기 때문에, 새끼를 등에 업고 다닌다.
그런 모습도 리얼하게 그려놓았다.
입 모양이 뭉툭하게 그려진 향유고래도 있다.

그런데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이런 산더미만한 힘센 고래를 어떻게 가냘픈 목선을 타고
총포도 없던 시절에 돌 작살로 잡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 암각화는 우리의 이러한 의구심을 풀어주는 모든 단서를 생동감 있게 전달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선사시대의 원시인이라는 선입견으로만 이해될 수가 없다.

놀라운 기술력과 문화적 저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고래를 포획하면 그 고래를 협업체계와 신분질서에 따라 배분했는데 그 배분양식을 암시하는 그림까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재미있는 사실은, 오늘날 미포(尾浦) 앞바다에 둥둥 떠있는 배들, 현대조선소 독 크 를 나와 시운전을 하고 있는 배들의 모습이 반구대 암각화에 그려진 고래의 모습과 너무도 닮았다는 것이다.
모습이 닮았을 뿐 아니라 그것이 모두 이 지역 사람들의 생계수단이라는 사실까지 동일하다는 것이다.
암각화를 들여다보고 흥미를 느끼는 것은 바로 암각화를 통하여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관심은 각화(刻畵) 그 자체가 아니요 인간의 삶이다.

마찬가지로 지금으로부터 3천년 후에 미포조선소가 사라지고 그 단서를 전하는 유물만 남았다면, 우리는 그 유물 자체보다 그 유물을 통하여 유추할 수 있는 당대인들의 삶의 모습에 관하여 이러쿵저러쿵 학설을 펴게 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러쿵저러쿵 할 필요가 없이 지금 바로 그러한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반구대 암각화나 현대중공업이나 나에게는 동일한 하나의 그림일 뿐이었다.
삼천년을 격한 인간들의 삶을 전하는.

나는 우선 현대중공업이라는 것이 조선사업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해양사업, 건설 장비사업,
플랜트사업, 전기전자시스템사업, 엔진 기계 산업, 연구 개발사업 등의 거대한 산업복합체라는 것도 잘 몰랐다.
그 중 조선사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45%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조선사업이라고 하면 그 거대한 배를 도대체 어떻게 만들까 하는 것이 우선 궁금했다.
그리고 그 거대한 배를 일년에 한 두 척 만들 며는 끽 이려니 생각했다.
한국의 기술로 그런 것을 만 들 수 있다는 것만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의 관념의 성벽을 여지없이 깨버리고 마는 사건이 생겨났던 것이다.
차를 타고 돌면서 조선소를 안내하는 사람이 왈,
수십 만 톤짜리 배를 일년에 평균 60척 정도 만든다는 것이다. 60척 정도라는 말에도 나는 감이 잘 안 왔다.
1척을 만드는 데 8개월에서 10개월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일년에 60척 정도가 만들어진다고 하는 의미는 결국 5~6일 만에 한 대씩 출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조선소에서 만든 기네스북에 오른 노르웨이선적의 세계최대 광석운반선은 36만5천 톤 급인데 그 크기와 하적 규모가 어느 정도냐 하면 900만 명의 서울시민이 올라타는 정도의 무게를 버틴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규모의 30만 톤짜리 배들이 골리앗 클레인 이 달린 거대한 9개의 독 크 여기저기서 만들어지고 있었고 이런 배들이 일주일에 한 척씩은 미포조선소를 떠나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의 바다에 떠있는 배들의 15%가 바로 현대중공업조선소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단일 업종으로 세계최대의 선박제조업체가 바로 현대중공업 탓뿐만 아니라, 전 세계 선박엔진의 35%가 현대중공업 엔진기계사업부에서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나로서는 도무지 상상키 어려운 이야기들이었다.
나를 경악시킨 것은 단순히 세계제일이니 최대니 하는 따위의 수사가 아니라, 이 땅에서 현실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한 구체적 인식이 나에게 너무 결여되어 있었다고 하는 반성으로부터 생겨난 것이었다.

우리는 너무 한국을 모른다.
이 거대한 시스템의 협동체계가 하여튼 실제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사회라고 하는 것을 나는 실감 있게 생각해보질 못했던 것이다.
62년 이곳은 인구 6만의 조용한 어촌이었다.
그런데 지금 100만이 넘는 대도시로서 세계의 선박, 자동차, 기타 공업을 선도하고 있는 것이다 .
나는 이날 아침 내려온 김에 현대중공업에서 강의를 한번 해주겠다고 했다.

반구대탐사를 마치고 현대중공업을 둘러보고 나니까 오후 5시 현대중공업체육관에는 3천 여 명의 청중이 꽉 들어찼다.
나는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정열한 곳에서 강의하는 것이 제일 두렵다.
강의란 본시 난장판에서 호기심어린 군중들에 둘러싸인 약장수분위기가 제일 좋은 것이다. 질서정연한 분위기 속에서는 군중을 제압하는 기를 발산하기가 매우 어렵다.

히틀러라면 그게 가능하겠지만 나에게는 그가 소유하였던 권위와 제식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체육관은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공간이 휑하여 썰렁하기 그지없다. 강의 장소로는 지극히 부적합한 곳이다.
그런데 내가 들어서자마자 현대중공업의 사원들은 나를 박수를 치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뭔가 기가 화통하는 느낌이 ?榕駭?
그리고 단에 올라서자마자 곧 웃음이 터졌고 나는 외로 운 공간에 타자로서 서있다는 생각이 없이 금방 그들과 혼연일체 가 되는 특이한 체험을 하였다.

원래 한 시간 정도 하기로 했던 것인데 꼬박 두 시간이 흘러도 사원들은 단 한명도 시선이 흐려지는 사람이 없었다.
제복 입은 사람들 앞에서 내가 단 한명도 졸지 않는 모습을 본 것은 내 생애에 처음이었던 것 같다.
나는 공무원들 앞에서는 절대 강의를 하지 않는다.
공무원들은 반드시 존다. 고급공무원일수록 그들은 반드시 존다.
이것은 예외가 없다.

현대중공업사원들은 나에게서 어떤 새로운 기운을 느끼는 것 같았다.
무엇인가 그들이 접해보지 못했던 별종의 신선함이 나에게 있는 듯했다.
나 역시 체육관에서 느낀 감회는 내가 하버드에서 학위를 끝내고 막 돌아와 모교인 고려대 에서 강의를 하기 시작했을 때 느꼈던 낯설면서도 싱싱한 전율 같은 것,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날 실상 내가 한 강의내용은 매우 어렵고 딱딱한 주제였다 :
ꡒ당신들은 한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세 가지 사건을 들라하면 무엇을 꼽으시겠나이까?ꡓ
선사시대로부터 중요한 일들은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묻는 것은 우리민족 전체에게 역사적 의미(historical significance) 를 준 사건을 묻고 있는 것이다.
이 조선반도의 사람들에게 한 민족으로서의 공동체의식, 그 아이덴티티를 준 사건으로서 신라의 삼국통일을 나는 그 첫손가락으로 꼽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신라의 삼국통일에는 여러 가지 이견들이 많다.
다시 말해서 북 진파 들은 신라의 삼국통일이야말로 우리민족의 최초의 비극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고구려의 진취적인 대륙기상이 꺾였으며 현 북경에까지 이르는 강성한 만주벌판의 고토를 영원히 잃어버리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삼국통일은 당연히 고구려에 의하여 달성되어야만 했던 과업이었다는 것이다.
당나라에 의존하여 굴욕외교를 편 김 춘추는 나쁜 놈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자!
백제만 해도 그것은 단순히 호남 지역에 국한된 한반도의 소국이 아니라 산동반도를 포함한 중국 대륙의 서해안지역으로부터 큐우 슈 우에 이르는 매우 강대한 지역을 지배한 국제적인 해양제국이었다.

그리고 삼국 중에서 문화적으로 가장 앞서 있었으며 심미적으로도 가장 섬세한 감각을 과시하고 있었다.
이 두 강대국에 비하면 신라는 그야말로 지정학적으로 영남지역에 갇힌 로컬한 후진국이었다.
이러한 후진국인 신라가 어떻게 고구려와 백제를 통일할 수 있었을까?
신라는 우선 백제와 고구려의 역사의 시행착오를 차분히 반성할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국제적으로 비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면적 일체감을 보다 밀도 있게 달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배자와 피지배자간의 삶의 양식적 동질성이 확보되어 있었다.

중국역사를 보면 중원(中原)을 점령한 모든 민족이 중국이라는 용광로속에서 반드시 아이덴티티를 잃고 만다.
몽고, 거란, 여진 , 돌궐, 흉노 등 수 없는 북방민족의 운명을 보면 내 말이 실감이 날 것이다.
만약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하고 중원을 지배했다면 나는 단언한다.
우리민족의 아이덴티티는 사라졌을 것이다.
단군의 배달민족이라는 독자적 일체감은 중원의 용광로에서 증발하여 버렸을 것이다.
신라의 삼국통일이 아니었다면
오늘 대한민국은 보나마나 중화대제국의 한 쪼가리 고려성(高麗省)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산동성 (山東省)과 다른 그 무엇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고구려가 우리 민족을 통일하지 않은 것은 너무도 천만다행의 사건인 것이다.
여기에 신채호류의 사학의 허구성이 있는 것이다.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비문의 분석에서도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고구려는 겉으로 비대해져가면서 속으론 비어간 대국이라는 것을 잘 알 수가 있다.

마치 자기의 비대함 때문에 멸종을 자초하고만 공룡처럼!
이러한 나의 이야기는 기실 강연장에 모인 현대의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논의가 될 수도 있다.

오늘 내가 관람했던 현대중공업의 위용은 참으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나의 논리의 배면에는 현대중공업과 같은 거대한 기업이 자칫 잘못하면 나당연합군에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던 고구려의 운명이 될 수도 있다는 암시가 깔려 있었다.
그만큼 우리사회의 문제는 우리의 역사적 교훈과 맞물려 있다.
오늘날 우리사회가 겪고 있는 노사문제의 진통도 바로 우리사회가 신라사회가 달성했던 어떤 동질성을 확보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불행일 수도 있다.

노측의 요구는 아직도 개발독재시대의 노동착취에 대한 항거라는 구태의연한 반동적 의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사측의 입장도 노측에게 우리민족의 구원한 앞날과 보편적 가치를 위해 참고 희생할 수 있는 진정한 삶의 양식을 비전으로서 제시하는데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왈가왈부, 임금투쟁, 날이 갈수록 경쟁력 없는 국가가 되어가고, 산업공동화현상은 심각해져 가는데 그 어느 누구도 서로의 공통의 미래를 위하여 마음을 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현세만의 쾌락과 분배를 위하여 미래를 희생시키고 있다니,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우리민족사에서 삼국통일에 버금가는 제2의 사건은 무엇일까?
강연장에서 어느 한 사람이 불쑥 일어나서 용감하게 대답했다 :

ꡒ세종대왕의 한글창제!ꡓ
우리 모두 그 대답 자에게 우레 같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정답이었다.

삼국통일이 우리민족의 강역적인 아이덴티티(regional identity)를 확보한 사건이라면 세종의 한글 창제야말로 우리민족의 문화적인 아이덴티티(cultural identity) 를 창출한 사건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글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오늘날 컴퓨터시대에 자기언어를 가진 민족으로서 웅비할 재간이 없었을 것이다.
세종은 분명 21세기 정보시대까지를 대비한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제3의 사건은 무엇일까?
흥미진진해져갈 즈음 나 는 나의 강의를 딱 끊고 말았다 :

ꡒ여러분! 이 문제는 제 입으로 듣지 말고 집에 가셔서 이불 속에서 좀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ꡓ
이날 밤, 나는 울산의 현대호텔에서 늘어지게 잤다.

그리고 다음 날 울산시가지를 구석구석 관찰하였다.

울산은 천혜의 미도!
너무도 아름다운 곳이었다.

산과 평야와 강과 바다가 하나로 어우러진 도시의 입지조건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가 없다.
그리고 울산에서 특기할 사항은 지방색이 없다는 것이다.
그 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타지에서 몰려든 사람이며 기회균등의 원리에 입각하여 삶의 질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울산본지 사람은 15%미만이며 경상도 땅이지만 호남사람들이 20%를 육박하며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그 나머지는 각 도별로 골고루 분포되어 있는 것이다.
울산이야말로 지방도시라는 개념을 초월한 개방된 21세기의 도시였다.
나는 그곳 사람들의 삶의 복지상황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어풍대가 바라보이는 일산해수욕장을 걷고 있자니 캘리포니아의 해변을 걷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어풍(御風)이란 신라의 왕들이 풍류를 즐기기 위해 거닐었던 곳이라는 뜻이요, 일산(日傘)이란 왕들의 행차에는 해를 가리는 일산이 반드시 따라다녔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울산의 사람들은 지금도 일산 밑에서 어풍의 풍류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서울 가는 비행기 시간이 다가왔다.

급히 차를 몰고 용이 춤추며 선녀와 함께 승천했다는 무룡산(舞龍山)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공항으로 가는 길에 통일신라시대의 걸작품으로 추정되는 어물동(於勿洞)삼존마애불을 관람하였다.
석양이 뉘엿뉘엿, 장엄한 약사여래본존의 모습은 너무 파손이 심했으나 오른쪽에 협시한 월광보살의 얼굴은 갸름한 여인의 애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마조(馬祖) 도일(道一)의 공안, “일면 불 월면 불”이 생각날 즈음, 마조처럼 늠름하게 생긴 어느 미치광이 노인이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씨부렁거리고 있었다.


<사회 > 문화일보 2003년 5월13일 오후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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